동네에서 산 쪽으로 맨 끄트머리 집 나이 육십 돼 과부장가 든 김효만씨, 묵은 아궁이에 군불 지피느라 진땀깨나 뺍니다
며칠 전 새 마누라 자리가 넌지시 안채보다는 사랑채가 거허기 좋겄다고 들녘도 훤히 뵈고 드나들기도 편허겄다고 했던 말 따라 이튿날로 팔 년 동안이나 안 때던 부엌에 무쇠솥 다시 걸고 뒷산 올라 어영차 나무까지 해왔는데
무슨 일인지 김효만씨 궁시렁대는 소리 사립문 밖까지 나옵니다 어라 이노무 장작이 왜 이런댜 붙으란 불은 안 붙구 연기만 폴폴 지리고 자빠졌네 아궁이도 그려 아무리 새로 손봤다 혀도 쓰던 아궁인디 어째서 헛심만 빼내고 그러능겨
그 바람에 도토리 훔치러 왔던 청설모만 화들짝 도망칩니다
군고구마에 목 빼던 마누라 자리가 그 새를 못 참고 한 마디 던집니다
쑤석거리기만 헌다고 불이 불겄슈 갈잎 쏘시개 먼저 타게 허고서나 장작을 들이밀던지 고구마를 넣던지 허야지 팔 년 묵은 아궁이가 어디 기다렸다는 듯 불을 들이겄남유
김효만씨 이래저래 혼자 생각에도 민망합니다 육십 나이에 부엌 들어가 아궁이에 사정사정 군불 한 번 지펴보자는 요량이 밤 깊을수록 남 우습습니다
'동네에서 산 쪽으로 맨 끄트머리 집'이니까 그 집 살림 형편 보나마나 뻔하다. 게다가 나이조차 육십이라니 이런 헌 신랑에게 누가 시집을 오겠는가. 운 좋게 새 마누라 자리 얻어걸린 김효만 씨, 혹시라도 마음 바뀔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 안쓰럽다. 안쓰러운 일 중 가장 안쓰러운 일이 제 몸을 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경우. 허나 아무리 맘이 급해도 팔 년 묵은 아궁이에 쉽사리 '장작' 들이밀 수는 없는 노릇.
그런데 김효만씨, 사정사정 아궁이에 군불 한 번 지펴보려는 진짜 속셈은 어디에 있나. '들녘 훤히 뵈는' 곳에서 활활 불을 지펴야 올해 들녘에 풍년이 든다고 믿기 때문이 아닐까. 장옥관(시인)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