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고생할 일이 없겠구나 싶었는데…."
4일 오후 이웃사랑 제작진은 경북대병원 무균병동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병상에 앉아있는 김경민(34)씨를 볼 수 있었다. 파란 마스크를 쓴 김씨는 자동차 관련 잡지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김경민씨?" 제작진이 그를 부르자 마스크 위로 둥근 눈이 도드라졌다. 김씨는 보던 잡지를 내려놓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저 사람이 아픈 사람인가 싶을 정도인 그에게 '환자'라는 말을 붙이기 어려워 보였다.
김씨가 경북대병원에 온 지도 열이틀째. 자신의 가슴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덩어리가 있다는 걸 처음 안 것은 지난해 12월이었다. 교정직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신체검사를 받다 알게 된 것이다.
"큰 병원으로 가서 정밀검사를 받으랬어요. 뭐 별거 있을까 싶더라고요. 건강한 체질이었으니까요."
농사일을 하던 아버지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 김씨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다리가 불편한 어머니(54)의 짐을 덜어드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림프종'이라는 생소한 병명이 더욱 무겁게 다가왔다. 그나마 악성이 아니어서 다행이었지만 당장 병원비가 문제다. 조혈모세포 제공자 확보와 입원, 건강검진, 간병비, 조직적합성 검사 등에 드는 비용만 1천만원에 이른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이제 어머니를 편히 모실 수 있겠다, 기초생활수급대상자라는 딱지도 떨어지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는데 병마가 찾아드니 막막하더군요."
몸을 너무 혹사시켜 그런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대학시절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로 일을 많이 했던 김씨는 그래서 졸업도 늦었다. 1년은 학비를 벌고 1년은 수업을 들었다. 10년 만에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지독한 가난은 떨어지지 않았다. 생계에 쫓겨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무원 시험에 매달려야했다. 마침내 지난해 교정직 공무원에 합격해 어머니와 부둥켜 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린 김씨. 가난으로 평탄하지 않은 삶을 살아온 자신과 같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선택한 교정직 공무원의 길을 눈 앞에 두고 병상에 있어야 하는 자신이 그래서 더 처량하다.
"90% 이상이 완치된다는데 돈이 원망스럽죠. 번번이 발목을 잡는데 헛웃음만 나올 뿐입니다."
하지만 김씨는 절망하지 않았다. 교정직 공무원 임용은 2년 미뤘다. 제작진을 만났을 때 자동차 관련 잡지를 보고 있던 건 출퇴근용 중고차라도 한대 사야될 것 같아서라고 했다. 김씨는 스스로에게 주문을 건다고 했다. 인생의 바닥을 쳤다고, 이제 병상에서 일어나기만 하면 된다고, 홀어머니와 즐겁게 살 일만 남았다고.
김씨는 완쾌되더라도 병이 재발할 경우에 대비해 간간이 병원에 와야하는 상황. 하지만 그에게 병마는 그저 스쳐지나가는 '안 좋은 일'쯤으로 보였다.
"1년 정도면 완치된다고 합니다. 젊은데 뭐가 무섭겠습니까. 이런 일도 있어야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을테지요." 눈꼬리가 슬쩍 쳐졌지만 그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림프종' 따위는 이겨낼 자신이 있다는 표정이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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