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엔 동정도 연민도 없다. 음악도 신음도 없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죽어가고, 나무 한 그루 없는 맨 땅엔 바람 소리만이 횡횡하다. 코엔 형제의 신작 '노인을 위한 나라'는 비정한 '침묵의 느와르'이다. 자신이 죽인 자의 피가 발에 스며들까봐 다리를 드는 냉혈 살인자와 점점 더 시간의 침입 앞에서 무력해지는 늙어가는 보안관과 돈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리석은 사냥꾼이 벌이는 쫓고 쫓기는 게임. 그러나 여기는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
텍사스 사막에서 사냥을 하던 사내 르웰린 모스는 참혹한 학살의 현장을 발견한다. 마약을 거래하다 일이 벌어진 죽음의 현장에서 운 좋게도 200만달러의 돈 가방을 발견한다. 돈을 챙겨 집에 오지만, 트럭의 유일한 생존자가 물을 달라던 기억이 늘 찜찜 하게 남아 있는 모스. 물통을 들고 현장을 찾지만, 사내는 이미 죽고 모스는 괴한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아무리 봐도 200만달러에 눈이 완전히 돌아 버린 모스가 왜 뒤늦게 물통을 들고 현장에 갈까? 묻지 마시라.'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코엔 형제의 연출작이고, 이 형제의 영화 세상에선 개연성이란 애시당초 존재하지 않으니까. 장르는 무규칙 이종 격투기처럼 변칙적이고, 서부극과 날선 스릴러와 하드 보일드 느와르 사이를 자유롭게 유영한다. 마치 폭력의 피카소(이 별명은 애시당초 샘 페킨파의 것이다)께서 깔끔하게 구획한 추상파 헤모글로빈 무비 같다고나 할까.
특히 잊을 수 없는 건 모스를 쫓는 사이코 살인마 역을 맡은 안톤 쉬거 역의 하비에르 바르뎀의 연기. 원래 스페인 출신의 배우로, 초창기 '하몽하몽'이나 '보카보카'에서 스페인의 변강쇠 같은 초창기 이미지를 벗어나, 이 중견 배우는 나름의 규칙으로 세상을 처단해 나아가는 사이코 킬러 역할을 멋들어지게 소화하여 아카데미 남우 조연상을 거머 쥐었다.
누가 죽을지 모르고 누가 살아 남을지 알 수 없는 이 영화에서, 어쩌면 쉬거는 유일하게 독립적이고 자신을 통제하며, 사람들에게 죽음과 삶의 운명을 부여할 수 있는 잔인한 신이다. 그러나 그런 그마저 우스꽝스런 헤어 스타일에 유령처럼 흰 얼굴로 산소통을 가지고 알 수 없는 미소를 띄며 사람들을 무차별로 죽인다. 사람을 살리는 산소통이 사람을 죽이는 도구로, 마치 거대한 남근처럼 보이는 에어 건으로 살인의 사정을 계속 해대는 장면은 참혹하면서도 대단히 웃긴 구석마저 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지난 해 타임지 10대 영화 1위부터, 미국내 각종 챠트를 모두 휩쓸고 마침내 오스카를 따냈다. 그만큼 이 작품은 목에 불쑥대어진 면도날처럼 예리하게 풍자적이며, 지독하게 차갑고 긴장되며, 은근하게 숨겨진 의미가 도드라진다. 첫 장면부터 끝까지 코엔 형제의 손끝에서 직조된 서스펜스는 이미 코엔 형제는 완급과 가속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거장이라는 사실을 유감없이 증명한다.
영화의 마지막 쉬거를 쫓던 늙은 보안관 에드는 부인에게 지난 밤 꿈을 꾸었는데 "아버지가 돈을 준 것 같았는데 그걸 다 잃어 버리는 꿈을 꿨다"고 부인에게 말한다. 둘 다 돈 가방을 잃어 버린, 에드의 꿈은 모스의 행적과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이어지는 화면을 채우는 똑딱 거리는 시계소리. 그렇지 않아도 살인자를 놓치고 자괴감으로 삼촌을 찾는 에드는 삼촌으로부터 '세월은 막을 수 없다. 널 기다려 주지도 않고 다 부질없다'고 이야기를 듣지 않았는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차가운 블랙홀처럼 인간의 운명에 대한 모든 고상한 예측과 마지막 남은 희망을 모두 흡수해 버린다. 이처럼 무상하고 이처럼 무기력하며 이처럼 우스꽝스럽고 이처럼 긴장된 영화가 또 있을까? 오스카가 반한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오! 형제는 용감했다.
심영섭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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