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손자 프로이드를 아십니까

내가 나가는 그림학교는 맨해튼의 센트럴 파크 근처에 있습니다. 그 학교 옆으로 카네기 홀도 있고 몇 블록만 걸어가면 현대 미술관도 있습니다. 뉴욕의 현대 미국관은 우리시대의 가장 도전적이고 난해한 미술을 과거의 미술과 비교해 볼 수 있는 장소입니다.

그림을 접고 친구랑 거기에 갑니다. 지난 12월 26일부터 루시앙 프로이드(Lucian Freud)의 인물 판화전이 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루시앙 프로이드는 정신 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손자입니다.

3층으로 가서 그의 작품 앞에 섭니다. 100여점이 넘는 그의 작품 앞에 서서 나는 세상을 살아가는 슬픈 육체를 봅니다. 그림학교의 모델들의 몸에서 늘상 느껴지는 세월의 슬픔들이 더 섬세하고 확실하게 다가옵니다. 학교의 누드모델들 앞에서 성적 충동을 전혀 느끼지 않듯이 이 프로이드의 그림 앞에서는 성적 충동은 커녕 인생살이의 아픔만이 보입니다.

할아버지 프로이드가 우리들의 꿈과 정신은 모두다 무의식 리비도에 의해서 분석된다고 했는데 손자 프로이드의 작품 앞에 서서는 인간의 육체가 슬픈 현존으로 느껴집니다. 그가 현존하는 최고의 초상화가라고 격찬을 들었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루시앙 프로이드는 1922년에 베를린에서 태어나서 유대인 학살을 피해 영국으로 피신했고 17세에 영국시민이 되었습니다. 유대인 소년 프로이드는 미술학교에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주로 인물화를 그렸다고 합니다. 손자 프로이드가 포착한 인물들은 침대나 거실이 아니라 응급실이나 영안실에 앉아 있는 듯 불안과 공포가 서려 있는 인물들입니다.

뉴욕의 날씨는 올 겨울 중에 제일 따스한 날입니다. 록펠러 센터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면서 군중들 속에 뒤섞여도 봅니다. 뉴욕은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 사이에서 '섬'처럼 둘이서만 한국어로 떠들고 있습니다.

그래도 루시앙 프로이드의 그림이 뇌리에서 떠나지를 않습니다. 손자 프로이드를 현대 미술관에서 만나면서 할아버지 프로이드를 함께 생각을 합니다. 천재들의 집안이었구나. 아니 이들도 유태인이구나. 세상의 유명한 사람 중에는 유대인이 참 많다는 생각을 새삼스레 하고 있습니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유태민족과 가장 많이 닮은 민족이 우리민족이라 했는데… 하고 생각을 해 봅니다.

백영희(시인·뉴욕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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