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저 사극 진짜야?"
사극에서 작가적 상상력은 어디까지 허용돼야 할까. 최근 지상파 TV를 통해 방영되고 있는 사극에 역사적 사실과 크게 다른 내용이 많아 인터넷이 달아오르고 있다. '대왕 세종'(KBS 1TV), '이산'(MBC TV), '왕과 나'(SBS TV) 등 공중파 채널이 사극을 쏟아내는 가운데 역사 기록과 맞지 않는 내용을 넣으면서 논란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극마다 역사적 오류 가득
'대왕 세종'의 경우 ▷양녕대군이 큰아버지 정종의 애희(愛姬) 초궁장에게 아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낮에 수작을 거는 장면 ▷양녕대군이 명나라 사신의 술상을 엎고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큰소리치는 상황 ▷세종 때의 명신 윤회(尹淮)가 시장바닥을 헤매는 주정뱅이로 나오는 것 ▷장영실이 반정부군에 몸담으면서 명나라 사신이 머무는 태평관을 포탄으로 공격하는 상황 등이 논란을 불렀다. 어린 충녕대군(훗날의 세종)이 대낮에 납치되는 대목은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이산'에서는 정순왕후가 사복을 입고 궐밖으로 매일밤 나오고, 중신들을 불러모으며, '주상과 세손 중에서 한사람을 죽여야 할 것'이라고 발설하는 내용 등이 도마에 올랐다. '정조 1년(1777년)'을 정조가 즉위한 해(1776년·영조 52년)로 잘못 해석한 것도 실수로 지적됐다. '왕과 나'는 내시 김처선과 폐비 윤씨 사이의 사랑을 소재로 삼았기에 애초부터 왜곡 논란을 피할 수 없었다. 나이 차이가 스무살이 넘는데다 완전히 계급이 다른 김처선과 폐비 윤씨의 사랑을 모티브로 설정한 것 자체가 억지라는 지적이다.
◆상술 VS 창작의 자유
논란은 해당 드라마의 홈페이지로 이어진다. '대왕 세종' 홈페이지에는 '담당 작가님은 사극 말고 현대극을 만들었으면 한다. 사서에 없는 내용으로 시청자를 헷갈리게 하고 원래 있었던 사실까지 바꿔 가짜 민족사로 자긍심을 고취한다는 건가?' '작가 맘대로 허접하게 창작하라고 우리가 사극을 보는 게 아니다. 역사의 재해석은 왜곡이 아니다'라는 비판글이 올라 있다.
'(역사가 왜곡돼 표현된)한국 사극을 수출하게 되면 외국인들에게 잘못된 역사만 보여주는 꼴' '동기유발과 당위성이 배제된 이야기는 생명력을 잃는다'는 충고도 있었다.('이산') '드라마 만드는 사람들이나 연기자들이나 역사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역사를 왜곡하는 드라마를 찍어야 하나?'라는 의견도 있다.('왕과 나')
회사원 정화중씨는 "역사에서 전혀 나타나지 않는 인물이 등장해 엉뚱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역사를 제대로 알고 있지 않은 시청자들라면 사실로 오해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역사 드라마에 많은 왜곡과 오류가 발견되는 것은 시청률을 의식한 제작진이 극의 재미를 위해 상상력을 더하거나 사실과 다른 내용을 넣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 역사 드라마가 툭하면 야사의 내용을 확대 해석해 끼워넣는 것도 문제점이다.
◆픽션 권한은 방임일 수 없어
'이산'의 제작 관계자는 "드라마 특성상 사실만 100% 담을 수가 없다. 실존 인물에 작가 상상력을 너무 가미하면 그런 지적이 나오는데 역사성과 흥미성 사이에서 적당한 접점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촬영시간이 임박해 완성되는 대본(쪽대본)을 원인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극 대본은 기본적으로 2, 3주 전에는 나와야 하는데 2, 3일 앞두고 연기자와 제작진에게 전달되는 관행 아래서는 사실 여부를 검증할 여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드라마 작가 신봉승씨는 최근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역사 드라마가 막가고 있다'는 글을 통해 "드라마와 사실은 맞지 않는 것이 정상이지만, 사람들이 역사 드라마가 사실과 같기를 희망하고 역사 드라마를 통해 역사를 배우고자 하는 과욕에 젖어있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픽션이라는 권한이 작가에게 주어진 자유방임이 아니라는 사실은 픽션의 구사보다도 더 중요하다"며 "드라마의 사회적 기능이 있는 만큼 작가들이 '시대정신'을 달리하면서까지 내용을 왜곡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 최근 사극 속 역사 논란
■태왕사신기='판타지 사극'을 표방한 만큼 논란도 많았다. 등장 인물 중 기하와 호개는 물론이고 연씨가문, 수지니, 화천회, 거믈촌, 사신 모두 허구다. 따라서 담덕과 기하, 연호개 세사람의 삼각관계 역시 허구다. 고구려 최전성기의 기틀을 마련한 소수림왕, 강력한 왕권을 구축한 고국양왕을 아주 무능한 왕으로 그렸다.
■주몽=부여가 한국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보다 소국으로 묘사했고, 민족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주체로 그렸다. 실제로는 고구려나 백제 모두 부여의 후손임을 자처했다. 의협심 강한 것으로 그려진 주몽에 대한 평가도 사료는 냉혹한 인물로 기록하고 있다. 역사서에 단 한줄 언급됐다는 소서노의 역할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았다.
■대조영=측천무후와 설인귀가 나란히 등장하는데 두 인물은 각기 다른 시대에 살았다. 설인귀가 발해 건국 과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점도 설인귀가 676년 신라에 대패당한 이후 거의 한반도와 관련이 없었다는 지적이 있었다. 흑수돌, 계필사문, 미모사, 금란 등은 실존인물이 아니었다.
■연개소문=연개소문이 안시성의 수호자로 나왔지만, 실제로 연개소문은 안시성 성주 양만춘과 사이가 안 좋았고, 안시성에 있지도 않았다. 연개소문이 어릴 때 신라에 있었고 좀 성장하고 나서 수나라에서 지냈다고 그려졌지만, 연개소문은 출생부터 죽기 전까지 고구려에서 지냈다. 고구려 멸망시에 연개소문이 살아 있는 것으로 나왔으나 사실에는 그의 사후 자식들의 분쟁으로 고구려가 멸망한 것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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