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저자와의 대화] '달의 제단' 작가 심윤경

격동 벗어난 90년대 학번…괜스레 사회에 빚진 느낌

대학에서 분자생물학을 전공한 소설가, 온화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열정적인 톤으로 소설을 쓰는 사람, '결말이 파국임을 알면서도 가야 할 길이 있다'고 믿는 사람, 작품에서 공통점을 찾기 힘든 작가…. 모범생, 모범시민이기에 오히려 '모범적이지 못한 사람에게 공감한다'는 소설가 심윤경을 만났다.

- 예고된 파국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인물이 소설 속에 종종 등장한다. 장편소설 '달의 제단'에서 주인공 상룡, '이현의 연애'에서 이현, '나의 아름다운 정원'의 박영은 선생이 그렇다. 그 끝이 파국이라고 할지라도 그 길을 걷는 사람을 좋아하는 듯하다.

"인생의 어느 순간에 비겁했다고 느끼는 때가 있었다. 나는 91학번이다. 격동의 80년대가 끝나고 학생들은 사회적 대의보다, 개인적인 관심사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관심이 사회보다 개인에 집중되던 시기라고 할지라도 내가 참여해야 할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대의를 향해 뛰어들지 않았고 나를 향해 파고들었다. 빚진 마음이 남아 있다. 80년대 학번이 아니라 90년대 학번이라는 것, 내 의지와 무관하지만 사회적으로 혜택 받은 세대가 아닌가하는 부채의식이 남아 있다. 작품 속에 개인을 버리고 대의를 택하는 사람이 등장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 학창시절 수줍음 많은 모범생이었을 것 같다. 그런데 '나의 아름다운 정원'에서 초등학생 한동구는 공부를 못하는, 그래서 머리가 나쁘다는 평가를 받고 모든 면에서 무시 받는 아이이다. 학창시절 엘리트였을 작가가 결코 공감하기 어려운 존재일 듯한데, 어떻게 그런 아이의 내면에 공감하고 세밀하게 그려낼 수 있었나?

"학창시절, 뒤처지거나 무시 받아본 경험이 없다. 가까운 사람 중에 어딘가 좀 빠지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오히려 좀 다른 사람에게 공감한다. 나는 나를 닮은 사람, 공부를 잘해서 학교에서 인정받는 학생에게 공감하지 못한다. 공부 못하는 아이, 그래서 무시 받는 아이, 사회적 약자에게 민감하게 반응한다."

- 소설 '나의 아름다운 정원'에서 공부 못하는 동구는 머리가 나쁜 게 아니라 난독증이 있음(개인 누구나 좀처럼 드러나지 않지만 사연과 사정이 있음)이 박영은 선생을 통해 드러난다. 그녀의 관심이 한 아이를 제대로 보는 것이다. 이 장면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박영은 선생은 나의 분신 같은 존재다. 박영은 선생은 내가 하지 못했던 일을 해낸다. 그녀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동구에게 관심을 가진다. 그 덕분에 동구는 성장한다. 박영은 선생은 또 학교교사라는 안정적인 삶을 버리고 사회문제에도 적극 참여한다. 이 역시 나의 부채의식에서 비롯됐다."

- '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문학이 원래 그런 분야지만 이 작품처럼 독자들마다 다른 각도로 읽는 소설도 드물 듯하다.

"이 소설은 내 의지와 무관하게 역사에 참여하게 된 사람들 이야기이다. 집이 청와대 근처이다 보니 남들은 안 봐도 될 것을 보았고, 고향이 광주이다 보니 항쟁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이야기이다. 운동정신으로 중무장한 사회 활동가라면 결과가 나쁘더라도 만족할 것이다. 자신이 원하고 각오한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소시민으로 살고 싶었는데, 다만 그 시대에 태어나고 그 장소에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파국과 마주친 사람은 다르다. 그는 원하지도 각오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역사의 격동과 마주서야 했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그런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다."

- 주역을 공부했다고 들었다.

"실기를 좀 더 보태면 '가게'를 차려도 될 정도였는데 그만뒀다. 주역에서는 나를 '곤(困)'으로 규정한다. 갇혀 있어 빈곤하고 괴롭다는 것이다.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지만 갇혀 있는 존재…. 모르겠다. 어쩌면 그래서 글을 쓰는 작가가 됐을 것이다. 작가란 갇혀있는 존재가 아닐까. 자신을 가둔 공간의 객관적 크기와 무관하게, 공간은 나무의 크기에 비해 좁다."

- 소설 '달의 제단'에 등장하는 이름이 흥미롭다. 한 남자의 정실로 시집와 달실댁이 된 여인이 아이를 낳지 못해 씨받이를 들이고, 정실 자리를 빼앗기고 달실 아랫댁이 된다. 결국 달실 아랫댁은 남의 집 부엌데기 달시룻댁으로 전락한다. 이름의 변천과 정실의 자리에서 밀려난 달시룻댁의 다리병신 딸 이름이 '정실'인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안동(소설 '달의 제단'의 배경)사람 말투를 흉내내자면 '달시뤽댁'이 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시루떡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을 짓고 싶었다. 시루떡은 제사에 많이 쓰는 떡이다. 그래서 소설 속 배경과 어울린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시루떡의 느낌은 온기와 사람냄새를 상징한다. 다리병신 딸 이름이 '정실'인 것 역시 '정실(正室)' 자리에서 물러난 여자의 마음을 담고 있다."

- 통념으로 볼 때 분자생물학과 소설은 어울릴 것 같지 않다.

"좋아서 분자생물학을 했다. 그리고 자신만만했다. 그런데 한번 싫증을 느꼈고 다시 붙잡기 힘들었다. 생물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인간에 대한 관심이었는데, 오히려 비인간적인 것처럼 보인다. 내게 과학과 문학은 시소처럼 오르락내리락 한다. 과학 아니면 문학, 문학 책 아니면 과학 책을 읽는다."

- 지금까지 낸 책에서 공통점을 찾기 어렵다.

"의도적으로 전작과 다르게 쓰려고 노력했다. 작가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 집중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나는 한 세계에 파묻혀 있고 싶지 않다. 늘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고, 스스로 확인하고 싶다."

작가 심윤경 새 소설이 4월에 나온다. 서라벌과 서라벌 사람에 관한 소설이다. 그녀의 소설책을 펼쳐본 사람은 알겠지만, 작가 중에 그녀만큼 짤막하게 자기소개를 마치는 사람도 드물다. 잇따른 변신과 간결한 자기소개는 과학도 출신 작가의 특성인지도 모르겠다.

▶심윤경은…

1972년 서울 출생. 서울대 분자생물학과와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쳤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으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달의 제단' '이현의 연애'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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