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사람이 있어 좋은 영화

며칠 전 시내 영화관에 들렀다.

극장에 들어서니 혼자뿐이었다. 처음에는 전세 낸 듯 홀가분한 생각이 들었는데 차츰 그 넓은 객석에 혼자 덩그러니 있자니 무섭기까지 했다. 돈 내고 왔음에도 미안한 마음도 생겼다. 그러나 영화 시작하기 전 다행히 관객 한 명이 들어왔다. 결국 두사람이 영화를 보게 됐다.

요즘은 세상이 참 좋아 집에서도 극장 분위기가 난다.

5.1 채널 AV리시버로 서라운드 음향을 재현하고, 프로젝터를 설치해 120인치 스크린으로 감상하면 굳이 극장에 가지 않더라도 극장 분위기가 난다. 편하게 음식을 먹으면서, 화장실에 갈 일이 있으면 '일시정지' 버튼만 눌러두면 된다. DVD에 최근에는 블루레이 디스크라는 매체가 생기면서 영상도 최고급으로 상향됐다.

DVD도 많이 사는 편이다. 시내 극장에서 볼 수 없었던 '우리 학교'나 '스틸 라이프' '포 미니츠' 등을 집에서 감상할 수 있는 것으로도 참 행복하다.

그럼에도 극장가기를 좋아한다. 사운드나 영상이 뛰어나기 때문은 아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과 같이 영화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함께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얼마 전 화가와 시인 몇이서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영화를 보았다. '파고'의 코엔 영화가 만든 범죄영화로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영화를 본 후 누구는 공기를 분사해 사람을 죽이는 살인자의 살인 무기를 얘기하고, 옆집 아저씨 같은 살인자의 외모를 얘기하고,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신을 얘기하고, 마지막에는 존재라는 철학적 의문까지 확장됐다. 혼자서는 느낄 수 없는 다양한 시선을 나누는 시간이 됐다.

우리는 극장에서도 많은 사람과 소통하며 영화를 본다. 어느 장면에서 웃음이 터지는지, 어느 장면에서 탄성이 나오는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다. 보고 나오면서 한 마디씩 뱉는 다른 사람들의 반응도 많이 참고가 된다.

그러나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꼴불견 관객도 많다. 영화중에 휴대폰을 들고 '김대리, 그건 알아서 해야지'라며 아예 대놓고 사무까지 보는 회사원도 있고, 과자봉지를 들고 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바스락대는 관객도 있다. '저 사람 아까 죽었잖아. 어떻게 살아났어?' 등 끊임없이 옆 사람에게 말을 거는 사람도 있고, 과감하게 애정행각(?)을 벌이는 연인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예전에는 신경이 곤두섰지만, 요즘은 안 그러기로 했다. 혼자서 쓸쓸하게 영화 보는 것보다 그것이 훨씬 낫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영화만큼 사람들이 좋아지고 있다.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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