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영화, 詩·그림을 만나다] ①색, 계

시인과 화가가 영화관에서 만났다.

영화를 본 후 시인은 시를, 화가는 그림을 그렸다. 영화만큼 이미지가 강한 장르도 없다. 그러나 시나 그림도 결국 이미지 작업이다. 영화를 본 후 시인과 화가가 떠오른 이미지를 작품에 녹여넣었다. 가장 대중적인 장르인 영화를 통해 시와 그림을 만나는 일은 흥미로운 작업이다. 흐르는 영상을 한 장의 스틸로 포착하고, 이를 다시 무한한 시의 세계로 풀어내는 것은 영화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이 될 것이다.

살을 맞댄다는 것이 이토록 위험하고 치명적인 것일까.

살 속에는 차가운 살의(殺意)가 흐르고 있었다. 죽여야 한다. 죽이고 싶다. 생명을 앗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처음에는 워낙 강해 살조차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러나 그 얼음이 교접하는 순간, 뜨거움이 흐르기 시작한다. 살 속에 파고들어 요동치고, 마침내 격정이 분출되면서 얼음은 녹고, 그 자리에 알 수 없는 감정이 자리 잡는다.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리안 감독의 '색, 계'는 제목에 이미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색'(色·Lust)은 눈앞을 하얗게 마비시키는 뜨거운 욕정이다. 동물적이며, 원초적이다. 욕정보다는 고기 육(肉)이 들어간 육욕이 맞겠다. 그러나 '계'(戒·Caution)는 색과 대척점에 있는 말이다. 피아노선 같이 팽팽하게 경계하고 살피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 사이에 있는 쉼표이다. 쉼표는 무한한 사유의 세계를 내포하고 있는 표식이다. 상반된 두 이미지 사이에 은폐하고 있는 사랑을 그리려는 감독의 의도가 엿보인다. 결과적으로 '색, 계'는 두 글자가 아니라 세 글자의 제목인 것이다.

화가 권기철은 이를 잘 간파한 듯하다.

세 조각으로 이미지를 구분했다. 양쪽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누드다. 하나는 거칠고 원시적인, 또 다른 하나는 벌거벗은 본능이 좀 더 잘 드러난 누드다.

'색, 계'는 파격적인 정사장면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실제 정사를 벌인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 정도였다. 음모와 음낭이 노출되고, 서로의 몸에 감긴 체위는 따라 하기도 힘든 고난도의 기술을 보여주었다.

화가는 상처 난 야수처럼 화급하게 벌이는 정사는 거칠게, 어느 정도 감정이 교류된 정사는 부드러운 터치로 표현하고 있다. 한쪽은 '계'가, 또 다른 한쪽은 '색'이 더 가미된 것이다.

그리고 그 중간을 붉은 색의 화려한 톤으로 채색했다.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사랑하는 주인공의 복잡한 감정을 복받치게 그려냈다. 바로 쉼표 속에 내재하고 있는 두 주인공의 심상이다.

시인 문인수는 눈빛에 포커스를 맞췄다.

빠지지 않을 수 없는 오묘한 양조위의 눈빛. 그는 처음 정사를 벌일 때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한다. 상대의 얼굴을 짓누르면서 뒤로 자신을 감춘다. 눈을 마주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태로운가. 그러나 상대의 존재를 받아들이면서 그는 그녀와 대면한다. 절정의 순간, 희열의 눈빛도 그대로 노출시킨다.

'온갖 체위로 한바탕 섹스를 치른 뒤' 찾아오는 침묵을 시인은 '재워주고 싶다'는 시어로 달래고 있다.

살의와 욕망이 휘몰아친 격정의 엑스터시. 그 뒤에 찾아오는 나른함을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기가 막힌 정적으로 그려냈다. 보석가게에서 거리로 나선 왕치아즈. 경찰에 의해 길이 막히고, 인력거에 조용하게 탄 그녀의 입술에 작은 미소가 보인다. 옷깃에 숨겨놓은 독약 캡슐을 만지작거리는,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는 순간 찾아오는 이 안온함은 뭘까.

'색, 계'를 본 그녀의 시선으로 그린 시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자꾸 젖이 돌아'란 대목이다.

'젖이 돈다'는 말은 다분히 본능적이다. 몸이 반응하는 격정의 섹스 본능일 수도 있다. 가랑이 사이에 파고드는 뜨거움을 어찌 막을 수 있을까. 피가 끓고, 살의 세포들이 살아 꿈틀거리며 결국에는 자신의 존재마저 잊게 하는 '색'의 본능이다.

그러나 그것이 왜 하필 '젖'일까. 젖은 모성이다. 안고 보듬고 쓰다듬어주고 싶은 감정이다.

인력거 안에서 언뜻 보이는 왕치아즈의 짧은 미소 속에 담긴 안온함이 '젖이 돌아'란 시어와 오버랩되는 것은 '재워주고 싶은', 이제는 '계'를 놓고 서로의 영혼 속에 안주하고픈 본능 때문은 아닐까.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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