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의 핵심 키워드는 '변화' '창의' '경쟁력' 등이다. 사료·비료값 폭등, 사상 최고가를 연일 갱신하는 기름값, 잇달은 자유무역협정(FTA), 쇠고기시장 개방 등 대내외에 현안이 산적해 있는 농업·농촌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법률가였던 제스로 툴(Jethro Tull·1672~1741)은 파종기를 개발, 현대농업의 창시자로 불린다. 그의 발명품으로 영국의 농업생산성이 높아졌고 산업혁명도 앞당겨졌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창조적 발상과 혁신으로 세상을 바꾼 것이다.
갈수록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들녘에도 다행히 독창적인 가치를 개발하려는 노력들이 싹트고 있다. 매일신문은 21세기 지식산업사회를 맞아 10년, 20년 뒤를 내다보고 패러다임의 변화에 도전하는 농업 현장을 소개한다.
◆우리 손에 미래가 있다
태백산맥 일월산 아래 첫 마을인 영양군 일월면 대티골 사람들은 요즘 부쩍 자주 만난다. 31가구 50명밖에 되지 않지만 사흘에 한번꼴은 모여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다. 막걸리 한잔 없어도 화투패가 안 돌아도 촌로들의 얼굴에는 활기가 넘친다. '부자마을'이 되겠다는 마을 공동의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영양읍에서도 23km나 떨어진 이 마을은 전형적인 두메산골. 주소득원이 고추와 산나물일 정도다. 1960년대 아연광산이 문을 닫기 전만 해도 500가구 가까이 살 정도로 형편이 꽤 괜찮았지만 폐광 이후 마을은 끝모를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주민들에게 변화가 일어난 것은 3년 전쯤. 연간 10만명이 찾는 일월산의 청정자연을 활용해 가구당 500만원에 불과한 소득을 올려보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주민들은 우선 공동으로 돈을 거둬 지난해 산수유나무 200그루를 심었다. 또 집집마다 생활하수 자연정화시설을 설치해 최고 수질을 자랑하는 계곡을 지켜나가기로 하는 한편 산마늘 작목반, 야생초 작목반을 구성해 친환경농업을 실천에 옮겼다.
한동희 대티골 마을발전협의회장은 "해마다 농산물 가격이 오르기만 바라는 천수답 신세였지만 지금은 우리 힘으로 마을을 바꿔보자는 열기가 뜨겁다"라며 "동회에도 얼굴을 비추지않던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변하고 단합도 잘 되고 있다"고 귀띔했다.
대티골 사람들은 이제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경북도가 올해 처음 실시하는 '부자마을 만들기 프로젝트' 시범사업에 선정된 게 자신감을 더욱 불어넣었다. 예산 8억원을 지원받아 ▷시각(야생화·곤충) ▷후각(금강송 피톤치드) ▷청각(바람·물·새소리) ▷미각(야생초 김치) ▷촉각(황토체험·산악자전거) 등 오감을 만족시키는 자연치유마을로 개발, 자유무역협정(FTA)를 두려워 않는 소득구조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부자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는 올해 10곳을 시작으로 오는 2017년까지 1천500억원을 투자해 경북지역 200개 마을을 가구당 평균소득 1억원을 올리는 활기찬 공동체로 육성하겠다는 전략사업이다. 기존의 농촌지원정책과 비슷해 보이지만 획일화된 하향식 지원이 아니라 주민 스스로 사업계획을 세우면 심사를 통해 지원을 결정하는 보텀업(Bottom-up) 방식이란 점이 다르다. 지역의 잠재력과 특수성을 가장 잘 아는 주민들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참여해야 사업이 성공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최웅 경북도 농업정책과장은 "가장 중요한 선정 기준은 주민들의 참여도와 창의성이며 농가 자부담을 20%로 책정해 주민 스스로 책임감을 갖도록 했다"며 "생산·가공·유통·문화·관광을 아우르는 새로운 농촌의 모범모델로 유도해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우물 밖 개구리가 되라
의성군 단촌·옥산·점곡면 농민 58명이 출자해 만든 (주)한국애플리즈는 사과와인 및 석류주를 생산하는 곳이다. 하지만 동남아에서는 관광지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사과밭에서 찍은 관광객의 사진을 술병에 상표로 붙여서 주는 '나만의 애플와인 만들기' 체험과 사과 따기, 사과파이 요리체험 등이 사과를 난생 처음 보는 외국 관광객들을 사로잡은 것이다. 여행사들의 설문조사에서도 애플리즈에서의 사과체험이 가장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곳에는 지난해 싱가포르·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태국 등 해외 관광객 3천명이 다녀갔다. 사업 첫해였던 지난 2005년 1천명에 비해 3배로 늘었다. 지난해 매출액 21억원 중에서 3억원을 체험관광으로 거둬들였다. 새로운 소득원을 개발한 셈이다.
'2007 경북농정대상'을 수상하기도 한 한임섭 한국애플리즈 대표는 "외국에 선진농업 연수를 다니면서 우리의 사과도 훌륭한 관광상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라며 "경북도가 해외 여행업체 사장단·언론 등을 대상으로 팸투어를 실시하는 등 외국인 농촌·전통체험관광 육성에 나선 것도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애플리즈는 올해부터 4계절 체류형 체험으로 관광분야 사업을 확대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4억8천만원을 들여 사과홍보관을 착공하고 숙박시설도 갖출 예정이다. 한 대표는 "우리에게는 익숙하지만 상대방에게는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있다는 데 착안한 것이 성공요인"이라며 "올해 외국인 관광객 3만명 유치가 목표"라고 말했다.
◆곡창에서 풀밭으로
예로부터 상주는 쌀과 누에고치, 곶감의 삼백(三白)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특히 함창읍 일대는 산이 많은 경북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넓은 들을 자랑하는 곡창지대다.
하지만 이곳은 올해부터 색다른 풍경을 연출하게 된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100ha 규모의 조사료(粗飼料·건초나 짚처럼 섬유질이 많은 사료) 전용시범단지가 조성돼 벼 대신 여름에는 수단그라스, 겨울에는 이탈리안 나이그라스 등 사료작물을 재배한다.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로 변했다는 상전벽해(桑田碧海)에 빗댈 만하다. 사업에 참여하는 농민은 논을 빌려주는 대신 쌀만큼의 소득을 보장받는다. 생산된 사료 작물은 인근에 건립될 섬유질 사료공장으로 보내져 영양가 높은 조사료로 생산된다.
경북도와 상주시가 조사료 생산에 나선 이유는 근본적으로 국제 곡물가격 급등에 따른 축산농가의 사료비 부담을 줄이자는 것이다. 하지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친환경농업 발전을 위한 기반 조성이 더 큰 목적이다. 해양투기 금지가 추진되는 가축 분뇨를 3년간 조사료 재배단지에 사용, 토양을 개량하면 별도의 추가비용 없이 자연순환농업을 실시할 수 있다는 것.
경북도 신팔호 친환경농업과장은 "t당 3만원을 주고 바다에 버리던 축산분뇨를 조사료 재배에 재활용하면 환경 개선과 함께 사료 자급률을 끌어올리는 효과가 기대된다"며 "쌀 생산량 조정에 따른 직불금 절감, 한우·젖소 품질향상도 빼놓을 수 없는 목표"라고 말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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