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릉그릉, 켁켁, 그릉그릉'
그렁대는 소리에 맞춰 갓난아이의 조막만한 가슴이 들썩인다. 입에 물린 가느다란 튜브가 함께 오르내린다. 아기를 품에 안은 엄마의 심장이 아프게 뛴다. 자신을 나무라는 탓이다. 엄마가 못나 핏덩이가 고생길이라며 자책한다. 가래 토하는 소리가 거칠어지면 아기를 안은 엄마의 손은 가늘게 떨린다. 오감이 아기의 입에 고정된다.
"우렁차게 울지도 못하니 저도 오죽 답답할까요."
생후 100일을 갓 넘은 딸 순향이를 안은 김미영(30)씨는 아기의 미세한 움직임에도 신경을 곤두세웠다. 할딱할딱 숨을 쉬는 딸의 등을 토닥이는 김씨의 손은 쉴 틈이 없었다. 어쩌다 순향이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아가씨, 무슨 생각해요?"라며 웃는 김씨의 눈에는 어느새 웃음이 묻어 있었다. 딸을 품에 안고 싱글거리는 모습은 더없이 행복해 보였다.
"이번에도 비슷하다고 하네."
지난해 11월 김씨가 순향이를 낳고 마취가 풀릴 무렵, 남편은 이 한 마디를 던지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그랬다. 김씨가 아기를 낳은 것은 이번이 세번째. 5년 전 낳은 첫딸이 잘 자라줘 고맙다는 것도 그제야 알았다. 3년 전 낳은 성욱이는 기도가 좁아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서울까지 가 수술을 받았지만 역부족이었다. 5개월의 고단했던 세상살이를 대신 아파해 줄 수 없어 가슴만 쳤다는 김씨 부부. 2년 뒤 새 식구가 된 순향이마저 문제가 있다는 진단에 부부는 할 말을 잃었다.
실업계 고교 시절 아르바이트로 경리일을 시작해 지금의 남편을 만나 아등바등 살아온 세월이었다. 살림은 좀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지만 '몸이 재산'이라는 신념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순향이에게는 물려줄 게 아무것도 없다.
'피에르 로빈 증후군'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병명이었다. 부족한 살림이지만 순향이가 살아나기만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그래도 먼저였다. 성욱이를 잃었던 그때로 돌아간다는 건 상상하기도 싫었다. 순향이의 턱은 성장이 덜 돼 입천장쯤 와 있다. 혀를 그대로 놔둘 경우 기도로 말려들어 가 질식할 위험이 크다. 숨을 쉬기 위해선 아랫입술과 혀를 붙여야 한다. 목젖이 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것도 없어 코와 바로 연결된 순향이의 입은 가래 소리를 막지 못한다. 순향이는 그래서 또래보다 작고 야위었다. 하루 500cc 이상을 먹는 여느 아기들과 달리 순향이는 360cc 정도밖에 먹지 못해서다. 젖병을 빨 수 없는 순향이에게 2㎜ 굵기의 튜브로 우유를 부어넣는다.
보통 아기들과 달라 고통스러워하는 순향이를 보며 김씨 부부는 엉뚱한 책망을 하기도 했다. "남편이 태몽을 꿨어요. 작은 뱀들이 몸에 계속 달라붙더래요. 무서워서 몸에 붙는 것들을 다 떼어냈는데 태몽인 것 같더래요. 나중에야 드는 생각인데 남편이 왜 뱀을 떼어냈을까요. 조그만 것들이 몸에 붙으려는데…."
꿈을 현실에 빗대보며 터무니없는 꿈마저도 자신들의 탓인 것 같아 가슴이 미어진다는 김씨 부부. '위기는 넘겼다'는 의사의 말에 위안이 생겼다. 희망을 찾는 부부에게 가장 큰 버팀목은 핏덩이 딸이다. 세상을 향해 가쁜 숨을 몰아쉬는 딸의 모습에 부부는 다시 기운을 차린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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