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이트클럽 부킹]"부킹은 생명" 요즘 누가 춤추러 가나요?

"여성은 공짜" 티켓 배부…웨이터 돈 벌려면 무조건 부킹 성공해야

"1990년대 나이트클럽만 해도 부킹이라는 용어가 낯설었습니다. 그때 그 시절엔 '쪼인'이라고 해 춤추는 남성과 여성에게 이성을 붙여주는 정도였죠. 나이트 부킹의 전성시대가 열린 건 2000년 이후로 생각됩니다. 수십개의 룸을 갖춘 대형 나이트가 출현하면서 더욱 고조된 부킹 문화는 2005년쯤 정점에 올라선 것 같아요."

부킹의 사전적 의미는 예약이다. 골프장'공항'호텔'식당 등에 이르기까지 부킹으로 통하는 예약문화는 우리 일상생활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부킹이라는 말이 유래한 미국과 유럽에는 없는, 오로지 한국 사회에서만 통하는 부킹의 또 다른 뜻이 있다. 바로 '만남'이다. 만남을 뜻하는 부킹은 나이트클럽 웨이터들이 남녀 손님을 짝지어 주는 행위를 의미한다. 예전에 나이트클럽은 춤추는 곳이었지만 요즘의 나이트는 부킹하러 가는 곳이다. 중구'수성구'달서구 나이트클럽에서 경력 20년이 넘은 웨이터와 영업부장, 상무를 만나 부킹 24시를 함께했다.

#오후 4~8시 "부킹은 판촉이다"

나이트클럽의 하루는 오후 4시부터 시작된다. 출근 도장을 찍은 웨이터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이른바 판촉 업무. "여성들에게만 주는 티켓을 챙겨 거리로 나갑니다. 여기저기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티켓을 나눠 주죠. 티켓을 가진 여성들이 방문하면 공짜 술을 대접합니다." 달서구 부킹왕은 "부킹이 생명인 나이트클럽에서 여성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이라며 "여성 입장에서는 공짜로 술과 춤을 즐길 수 있기 때문에 한번쯤 찾아오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웬만한 나이트에는 판촉부장도 따로 있다. 이른바 '물'이 좋아야 나이트가 뜨기 때문에 판촉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어디에 뿌릴지, 얼마나 많은 티켓을 뿌릴지 결정해 끊임없이 좋은 물을 찾아 헤맨다. 중구'수성구 나이트클럽 실무자(웨이터보다 한 단계 높은 관리자)들은 "어디에서 좋은 물을 찾는 지는 나이트만의 비밀"이라며 "거리에서 만나는 미모의 여성에게 바로 티켓을 나눠주는 '즉방'도 있다"고 귀띔했다. 나이트 입장에서는 티켓을 가진 여성들에게 3~4만원의 기본비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손해지만 영업을 위해 당연히 감수해야 할 희생으로 여기고 있다.

경기침체와 클럽간 무한경쟁이 맞물리면서 대구 나이트클럽의 티켓전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4년 전쯤부터 시작해 장사가 잘 안 되는 월'화요일쯤 한 차례씩 나눠주던 티켓을 지금은 일요일을 제외한 거의 매일 돌리고 있다.

#오후 8~10시 "부킹은 전투다"

판촉을 끝낸 웨이터들이 부킹전선에 뛰어드는 시간은 오후 8~10시쯤. 성수일인 금'토'일요일에는 오후 10시만 돼도 룸과 홀이 꽉 차 바깥에서 기다려야 할 정도다.

"요즘 웨이터들은 부킹에 목숨을 겁니다. 웨이터는 나이트클럽 직원이 아니라 일종의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자기가 데려온 손님의 매상을 클럽과 일정 부분 나눠갖는 방식이거든요. 손님을 끌어오고 다음에도 다시 찾게 하려면 무조건 부킹을 성공시켜야 합니다."

손님유치 경쟁이 치열한 요즘 나이트클럽 웨이터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전투 부킹'이라는 용어가 유행하고 있다. 전투 부킹이란 전투라도 하듯 치열하게 부킹을 성사시킨다는 의미.

포털사이트에서 대구의 나이트클럽을 검색하면 클럽에서 일하는 웨이터들의 홈페이지가 뜨고, '부비 부비 부킹 100%'라는 문구와 함께 '전투 부킹 전문 담당, 잘 해주기로 소문난 추천 웨이터'라는 프로필들이 함께 실려 있다.

이런 웨이터들은 발에 땀이 나고 러닝 셔츠가 젖을 만큼 부킹에 온 힘을 다하고, 앉아 있는 여자 손님을 번쩍 들어 안거나 등에 업고 가는 이벤트까지 벌이기도 한다.

#오후 10시~오전 4시 부킹은 원타임이다

나이트클럽에서 가장 많은 남자 손님들이 들이닥치는 시간은 오후 10시쯤. 자정이 지나야 젊은 여성들이 많아지기 때문에 진정한 고수들은 새벽에 나타난다.

웨이터를 따라다니며 현장에서 지켜본 부킹은 원타임이라는 말이 절로 실감난다. "남자 손님들이 룸 안으로 들어가는 바로 그 순간부터 부킹이 시작됩니다. 웨이터 한 명은 남자 손님을 룸으로 안내하고 다른 한 명은 홀에서 춤을 추거나 테이블에 앉아 술을 마시는 여성들을 상대로 작업에 들어가는 거죠." 하지만 여자도, 남자도 마음에 안 들면 만남은 몇 초 걸리지 않고 끝나버린다. 시선을 마주하는 그 순간, 서로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고개를 돌려 외면하거나 바로 나가버린다는 것.

"웨이터들은 남자와 여자 손님이 함께 자리에 앉을 때 비로소 부킹에 성공했다는 표현을 쓰죠. 하지만 이런 만남도 길지는 않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거나 재미가 없으면 몇 분도 가지 못하니까요."

하나의 룸에서 2시간 남짓한 짧은 시간에 20명이 넘는 여성들이 들어가고 나오기를 반복하는 게 다반사. 전쟁터나 다름없는 부킹 현장은 그렇게 끊임없는 '급만남'을 거듭하다 오전 4시 무렵에서야 마감된다.

◆부킹남·녀, 그들이 궁금하다

나이트클럽에 부킹하러 오는 남자와 여자들은 어떤 사람일까?. 나이트클럽 웨이터와 실무자들은 "나이트에 오는 사람들은 정말 다양해졌다"며 "때론 일탈과 욕망을 꿈꾸지만 한번쯤 아무 생각없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장소로 나이트만큼 적당한 곳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룸에서 마음에 드는 남자 직접 고르기도

#부킹녀= 아직 주부와 이혼 여성들이 많지만 갈수록 결혼이 늦어지면서 미혼 여성이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 미혼여성 연령층 또한 20대 중반에서 돈과 외모를 갖춘 30대 중'후반 전문직까지 다양하다. 여자손님 가운데는 '시골' 원정대도 많다. 대구 인근시군에는 나이트 문화가 없다 보니 새로운 세계를 접해 보자는 호기심을 안고 달려오는 경우가 많다. 구미'왜관'칠곡'영천 같은 가까운 곳이 많지만 청송'영양 같은 외진 곳에서도 온다고.

드물긴 하지만 공짜 티켓이나 기본비용만 내고 홀에서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며 노는 여자들과는 달리 룸에서만 노는 부킹녀들도 있다. 남자들의 방을 전전하는 게 자존심 상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룸에서 술을 마시며 마음에 드는 남자를 직접 고른다.

▷고소득'자영업자 주류…서울서 오는 원정팀도

#부킹남= 기본적으로는 돈 있는 남자다. 고소득 직장이나 자영업자들이 주류다. 남자 손님의 절대 다수는 기본 비용만 치르는 홀 테이블보다 룸을 원하는데, 최소 양주 1병을 시켜야 하는 룸 값이 일반 직장인들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다. 그러나 남자 손님 또한 점점 다양해지는 추세다.

회식 때 돈을 거둬 클럽을 찾는 일반 직장인들도 있고, 서울'부산에서 대구까지 원정오는 나이트 동호회원들까지 있다. 주로 남자들로 구성돼 전국을 돌아다니며 인터넷이나 오프라인에서 나이트클럽 감상 후기를 주고 받는 동호회는 나이트 부킹의 새로운 경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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