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12일 당의 4·9총선 후보자 공천심사 과정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선 것은 곧 뚜껑이 열릴 영남권 공천을 겨냥한 선제공격으로 풀이된다. 또 자파 인사들의 잇따른 공천 탈락을 더 이상 지켜만 보지 않겠다는 메시지라는 분석도 나온다.
◆위기감=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격앙된 표정으로 비판을 쏟아냈다. 최근의 공천심사 과정에서 느낀 배신감과 비애감을 숨기지 않았다. 단문의 절제된 표현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해온 이전과는 달리 '어마어마한 음모' '말도 안 되는 기가 막힌 공천' '원칙도 기준도 없다' 등의 거친 표현도 마다하지 않았다.
박 전 대표는 당 공천심사에서 이미 이규택(경기 이천·여주)·한선교(경기 용인을)·문희·송영선(이상 비례대표) 의원 등을 잃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측근들을 자신의 곁에서 떠나보내야 할지 모를 상황이다.
현재까지 한나라당 공천자의 계파별 분포를 보면 친이명박 측이 116명, 친박근혜 측이 28명으로 약 4대 1의 비율로 친이가 압도적으로 앞서고 있다. 대선후보 경선 당시 당내 절반에 가깝던 세력분포와 비교하면 크게 위축된 모양새다. 앞으로 친박 의원의 탈락 사태가 계속될 경우 차기 대권 가도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박 전 대표의 기자회견으로 공심위 심사 방향을 돌릴 수 있을지가 관심거리다. 그는 "기가 막힌 일들이 비일비재했고, 이렇게 잘못된 공천이 있을 수 있느냐라고 생각한다"며 "이런 공천으로는 선거 후에도 당이 화합하기도 힘들고 힘든 상황이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오로지 원칙과 기준을 갖고 공정히 해달라고 (이명박 대통령에게 부탁)했는데 살생부가 공연히 나돌고 사적 감정만으로 아무 문제없는 사람을 탈락시키는 등 우려했던 부분이 현실화하고 있다"며 "총선 이후에도 화합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영남권 사수=박 전 대표는 이날 '영남권 50% 물갈이 합의설' 유포자를 색출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전투 모드로 돌변했다. 이런 배경에는 자신의 지지세가 강한 영남권을 보호, 자파 인사들을 살리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 전 대표는 자신이 이방호 사무총장과 '영남권 50% 물갈이'에 합의했다는 설과 관련, "(특정 세력이) 영남권 50% 물갈이를 하려고 미리 짜놓고 우리한테 뒤집어 씌우려는 것"이라며 "이런 술수까지 난무하는 데 대해 분노를 감출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공심위가 영남권 심사 결과 발표를 미루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이제는 경선조차 치를 시간이 없게 됐다"며 "문제가 있어 발표가 지연되는 지역구는 공정하게 경선을 하면 되는데 이마저도 안 되는 이상한 공천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영남 공천 미확정 지역은 58곳이고 경합자 가운데 친이와 친박의 비율이 30대 22, 현역의원으로 보면 28명 대 20명이다. 같은 비율로 물갈이가 진행될 경우 친박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 또 영남권의 친박 의원들은 친이 측보다 고령·다선이 많다. 물갈이 대상에 더 많이 포함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결국 교체율이 높아질수록 이래저래 친박만 더 큰 손해를 본다는 얘기다.
이를 놓고 한 측근은 "앞으로 영남권 절반이 교체된다면 박 전 대표 측이 훨씬 불리하다.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합의를 했겠는가"라며 "야당으로 10년간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영남권 현역 의원과 당협위원장들은 오히려 당에서 배려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박상전기자 miky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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