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여러분,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그런데 이 덕담이 하루아침에 된서리를 맞았다. 평균 40억원이 넘는 재산을 가진 이명박 정부의 새 각료 지명자들이 富者(부자)라는 이유로 줄줄이 낙마하는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물질적으로 만족한 상태라 감투를 간절히 원했을 터인데 울며 겨자 먹기로 스스로 물러날 수밖에 없는 뒷모습을 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더욱 씁쓸하다.
아마 부자라는 이유로 장관에 지명되지 못한 것은 한국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희귀한 현상일 것이다. 자본주의가 발달한 정도로 치면 한국도 상당한 선진국 수준인데 왜 '가진 것'이 문제시되는가.
왕조 시대나 일제 시대처럼 백성 수탈의 주체가 뚜렷해 남의 재산을 빼앗아가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지는 '열린 사회'에 사는 대한민국, '가진 자'를 흠집 내려는 여론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여기 중고 자동차를 사고파는 곳이 있다. 중고 자동차를 파는 사람은 이 차가 사고를 몇번 냈으며 부품의 어느 곳이 불량하다는 등의 정보를 환히 알고 있을 것이다. 심지어 이 차를 내다 판 사람의 운전 습관까지도 파악, 차량의 주행 성능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고차를 사러가는 사람은 이 차의 겉모양만 보고 차를 판단할 뿐 속사정은 잘 모른다.
이럴 경우 이 차가 거래되면 누가 손해를 볼 것인가. 당연히 사는 사람이 피해를 본다. 차량의 하자를 모르기 때문에 당연히 그 차가 갖고 있는 가치보다 높은 가격을 주고 사게 마련이다. 사는 사람은 파는 사람보다 차에 대한 정보를 덜 갖고 있기 때문에 보는 손해이다.
이를 정보의 비대칭성(asymmetric)이라고 한다. 물건을 사고팔 때는 양자가 같은 정보를 갖고 있어야 정당한 가격이 형성된다. 그렇지 않으면 물건을 사고 나서 필시 '속았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비대칭 정보를 가지고 정당하지 못한 게임을 하는 경우, 어떻게 응징하는가. 일상생활에서는 간단하다. 소비자들은 두번 속지 않는다. '그 집 물건 엉망이다'는 소문을 내면 그 중고 자동차 가게는 문 닫아야 한다. 소비자 주권 시대에 통쾌한 복수다. 그러나 이것이 고위 공직자에 해당되면 문제는 달라진다.
분명 그 사람의 생산력(봉급)이 얼마이고, 물려받은 재산이 어느 정도라는 것이 드러나 있는데도 분에 넘치게 재산을 갖고 있다면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을 모았거나 아니면 뛰어난 財(재)테크 실력을 가진 자임에 틀림없다. 부정한 방법을 썼다면 의법조치하면 되는데 문제는 재테크의 경우다.
재테크는 주로 주식이나 부동산에 대한 투자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고위 공직자들은 손 대는 주식마다 몇갑절씩 오르고 땅도 샀다 하면 금싸라기로 변하는 '족집게' 초능력을 갖고 있다. 이쪽에 투자했다 망했다는 고위공직자는 별로 듣지 못했다. '땅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고 '큰 병에 걸린 줄 알았는데 아니라서 기념으로 산 땅'이 아니라 이미 돈 된다는 '내부 정보'를 일반 국민들보다 한발 앞서 입수했다는 의혹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정보 비대칭에 따른 불공정 게임이다.
이런 경우 어떻게 응징할 것인가. '내 돈 내 맘대로 하는' 자본주의 논리로는 응징할 수 없다. 그러나 여론은 시퍼렇게 살아있어야 한다. 적어도 지도자의 자리에는 앉지 못하게 해야 한다.
퇴계의 매화 사랑은 유명하다. 돌아가시기 5일 전, 설사를 했다. 마침 매화 화분이 곁에 있었다. 선생은 매화를 다른 곳으로 옮기라 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梅兄(매형:매화를 높여 부른 말)에게 불결하니 마음이 절로 미안하구나"
나의 악취가 행여 남의 향기를 해치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 그것이 리더십이다. 국민은 그들의 뛰어난 재테크 실력을 보고자 함이 아니다. '인간적인 향기'가 나는 그런 사람을 찾고 있는 것이다. 비대칭 사회를 '대칭 사회'로 만들려는 노력, 그것도 지도자가 받들어야 할 덕목이다.
논설위원 尹 柱 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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