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종문의 펀펀야구] 승리 준비하는 프런트

끝내기 안타로 역전승을 거둔 다음날 아침 구단 사무실의 분위기는 어떠할까? 짜릿한 순간을 복기하며 여유롭게 마시는 커피에 승리의 여운이 묻어난다. 그러나 역전패를 당한 팀의 분위기는? 컴퓨터 좌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릴 만큼 싸늘하기 그지없다.

승패를 반복하는 선수들은 이미 전날의 아쉬움을 지워버렸을지도 모르지만 유독 프런트는 그렇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승리를 위해 모든 준비를 시작하는 곳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감독과 코칭스태프를 인선하고 선수를 구성해 전열을 가다듬기까지 심혈을 기울여 준비했지만 정작 경기가 시작되면 이기기 위해 그들이 해야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노심초사 기다리며 승리를 기원할 뿐이다. 그러므로 성취의 기쁨을 갑절로 느끼고 실패에 더 큰 아픔을 느끼는 것이다.

6번이나 한국시리즈 패권 도전에 좌절하고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한 삼성은 2000년부터 은밀한 변화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99년말 부임한 김재하 단장은 대구상고 출신의 야구 마니아였다. 그는 속절없이 결과만 기다리는 프런트의 역할에 대해 짙은 회의를 품고 있었다. 일처리가 빠르고 정확했던 그는 이미 삼성의 위기 때마다 제일모직에서 차출되어 프런트의 지나친 간섭과 월권으로 벌어진 코칭스태프와의 불협화음을 곁에서 익히 보아온 터였다.

2000년 김용희 감독 시절 그는 선수단과 전국을 함께 다니며 명문 구단을 만드는 방법 구상에 몰두했다. 그리고 시작한 일이 야구계의 많은 사람으로부터 조언을 얻는 것이었다. 근 1년 가까이 수집한 수많은 견해를 종합해 그가 내린 결론은 사람과 시스템. 결론이 서자 하나씩 조약돌을 닦듯 정돈하기 시작했다.

사령탑으로 기본에 충실하고 주인 의식이 강한 김응용 감독을 선택하고 한번 버린 선수는 다시 받지 않는다는 삼성의 통념을 깨트리며 당시 선수협 문제로 꺼려하던 자유계약선수(FA) 양준혁을 영입했다. 동기 부여를 위한 연봉 책정시스템 재정립에서부터 감독 중심으로 돌아가는 조직을 지원하는 일까지 체계를 갖춰 나갔고 현장에서의 신속한 의사 결정과 집행 시스템이 자리를 잡았다.

불편했던 주변을 새롭게 돌아보면서 관계를 개선해 원군을 얻었고 작은 약속도 소중히 다루며 안팎의 신뢰를 쌓아갔다. 준비된 개혁으로 삼성은 1년만에 일사분란한 조직으로 변모되기 시작했고 불과 2년째 극적인 우승으로 결실을 맺었다.

어느 팀이나 프런트가 똑같이 노력하고 준비하지만 그 평가가 다른 것은 무엇 때문일까? 유학을 다녀온 단장들도 현장 적응에 실패를 거듭했지만 최단 기간에 팀을 정상 대열에 올려놓고 10년째 최강 프런트를 구축한 김재하 단장의 비결은 그의 신념에서 나타난다. "경기가 시작되고 이기는 방법을 찾는 것은 요행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 또 전력이 우수하다고 반드시 이길 것으로 믿는 자도 경험이 부족한 것이다. 가장 뛰어난 승부사는 경기를 하기 전에 이미 이길수 있는 모든 준비를 갖춘다. 그것이 바로 프런트의 역할이다."

최종문 대구방송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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