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터넷 달군 '두류시장 떡볶이 아줌마'

법이냐? 밥이냐?

2월 22일 오전 10시 20분쯤 대구 두류종합시장 남편 노점상 구역. 일대 46개 점포천막 등에 대한 철거 행정대집행 철거반원이 떡볶이 그릇을 잡았다. 순간 이를 본 한 노점상 아줌마가 똑같이 그릇을 잡았다. 밀거니 당기거니 하는 사이 그릇은 공중으로 날았다.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떡볶이 그릇. 하얀 떡이 나뒹굴고 빨간 국물이 바닥을 흥건히 적셨다. 철거반원은 자리를 떴지만 아줌마는 그러지 못했다. 억장이 무너진 아주머니는 울음을 터뜨렸다.

누리꾼들을 울린 한 장의 사진 '서러운 떡볶이 아줌마'는 이 순간을 포착했다. 이 사진은 22일 오후 3시 40분쯤 뉴시스가 올린 후 하루 만에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1만6천여개, 다음에서도 4천여개의 댓글이 달릴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노점상 철거 끝난 곳에 펜스가

행정대집행이 있은지 2주 뒤인 지난 7일 금요일 오후, 기자가 현장을 찾았다. 그날의 혼란과 아우성은 간데없고 재개발 공사 소리만 가득했다. 아파트 담장을 기대고 장사하던 노점상은 이제 공사 현장 주위로 빙 둘러진 철제 펜스를 의지하고 장을 펼치고 있었다. 그마저도 손쉽게 영업을 재개할 수 있는 나물이나 간단한 과일 노점상만 20~30명 나와 있을 뿐 그날 시설을 다 빼앗겨 버린 떡볶이 장사 등은 일을 나올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물건만 있고 주인은 안 보이는 곳도 있었다.

"그날 분위기가 험악했지요. 금방 밀더라고요. 다 나이 들고 자식 먹여살려야 하는데 안타까워요."

ㄷ소매점 여주인이 당시의 일을 떠올리며 말했다. 불과 5m 거리를 사이에 두고 있었지만 각자의 운명은 판이하게 엇갈렸다. 그녀는 "올해 입학한 자녀가 있는 아주머니라 가게 앞에서 장사하도록 했다"며 가게 앞 떡볶이집에 대해 설명했다. 힘들게 중고 리어카를 구해서 장사를 시작한 아주머니라고 했다.

이곳에서 과일 노점상을 한지 3년 됐다는 50대 여인은 "분식류는 준비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기 때문에 아직 나오지 못하고 있다. (철거 때문에) 들어간 사람들 다 나온다고 하더라"며 철거 집행의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녀는 "점포 얻을 형편이 안 돼서 이렇게라도 장사를 해야 먹고살지"라면서 "10월 입주라는데 (철거를 하다니) 도저히 인간의 도리가 아니다"고 달서구청의 행정대집행에 분노를 나타냈다.

50대로 보이는 떡볶이 장사는 목소리에 더 날을 세웠다. "(아파트) 공사 끝나면 노점을 다 치워 주겠다고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 소방차 물대포를 쏘는 게 말이나 되나?"

◆"생계대책 마련해 줘야"

취재를 하는 동안 주변 아주머니들이 하나둘 몰려들더니 그날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전경차가 3대가 왔니 6대가 왔니 논쟁도 붙었다. 소방차가 동원된 것도 따지고 들었다. 입구에 세워둔 티코 차량을 장정 네명이 훌쩍 들어 치워 버렸을 때에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도 했다.

그들의 증언이 계속되는 가운데, 누군가 '떡볶이 아줌마'(달서구청 관계자는 야채 파는 분이라고 했다) 김춘자(69)씨를 데려왔다. 김씨는 "몸을 다친 것도 서럽지만 마음이 더 아프다"고 했다. "몇십년 생계를 꾸려온 삶의 터전을 (철거반원이) 엎어 놓았을 때에는 가슴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고도 했다. "마음이 어수선해서 일이 손에 안 잡힌다"는 김씨는 당시 몸싸움으로 생긴 멍 때문에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으며 몸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있었다.

"아니, 노점상 40여명 모인 곳에 무슨 사람을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보내냐. 뒤에서 덮치며 시작하는데 인정사정이 없더라. 냉장고도 그냥 부숴버렸다. 하루에 1만원을 벌어도 남을 도우며 살아왔다. 아무리 말을 해도 들어 주지 않으니 스스로 일어날 수밖에 방법이 더 있겠느냐?"

남편을 암으로 잃은 김씨에겐 3남1녀가 있지만 모두 먹고살기 바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김씨는 '자식에게 누가 될 것'을 걱정했다. 10만원짜리 월세방에 사는 김씨는 이제 자신의 앞날을 살펴야만 한다. 이때 한 아주머니가 "구청 직원이 또 찾아와 '장사 못하게 했는데 왜 하느냐. 철거해야겠다'고 경고했다"는 말을 전했다.

50대 과일집 아주머니는 "그동안 소방도로는 확보해 놓고 장사했다"며 "시 땅에서 장사하는 것이라면 정당한 방법을 찾아주고, 세금을 내라면 내겠다. 이제껏 노점으로 먹고살았지만 앞으로도 더 살아야 한다. 장사만 할 수 있게 해 달라"며 호소했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 달서구청 해명

달서구청의 사정도 딱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구청은 아파트 재건축조합으로부터 지난해 9월쯤 아파트 단지 내 도로조성 작업을 위해 협조 공문을 받자, 노점상들에게 3차례에 걸쳐 자진 철거를 종용해 왔다고 했다.

그동안 노점상, 조합, 구청 간 협의가 2차례 열렸고 조합 측이 "올 2월초까진 봐줄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혀 지난달 10일까지 철거 기한을 묵시적으로 연기했다고 구청 측은 밝혔다.

당시 철거를 담당한 달서구청 건축과 관계자는 "노점상 측의 편의를 최대한 봐줬다. 직원 5명이 거의 매일 나가 자진 철거를 설득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며 억울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노점상 측의 부상자 발생 주장에 대해서도 "연로하신 분이 철거 중에 (분에 못이겨) 스스로 쓰러져, 당시 대기중이던 보건소 구급차로 즉각 인근병원에 이송했다. 나중에 확인하니 별 탈이 없었다"고 말했다.

노점상을 합법화하는 등의 대책은 없느냐는 질문에는 그는 "명백한 불법인 만큼 (전국 어디에서도) 대책은 없다고 봐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노점 위치가 재개발 아파트 공사 현장과 인접해 철거를 미룰 수 없었다"며 특정한 구역을 제외하곤 노점 활동에 대해서는 현실을 참작할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 취재가 있은 후 일주일 뒤인 이달 14일 오전 달서구청은 두류종합시장 인근 노점상에 대한 단속을 다시 벌였다. 12일 계고장을 보낸 달서구청은 이날 노점상인들의 비·바람막이용 파라솔을 압수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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