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코스모스 사랑고백

항상 우리 초등학교 동창들이 코스모스를 보면 내 생각이 난다고 한다. 내게는 코스모스에 얽힌 아름다운 추억이 있고, 그 추억이 친구들 사이에는 유명한 일화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창 놀기 좋아하고 친구가 많았던 20대 중반, 나는 우연히 초등학교 친구들 틈에서 그애를 다시 만났다. S,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같은 반 남자아이였고 2학기 때였나, 반장을 했을 만큼 공부도 잘했고 성격이 활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시 만난 S가 무척 반가웠지만, 나는 그에게 단순한 친구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여럿이 어울리다 보니 S는 나에게 남다른 감정을 갖게 되었고 솔직하고 터프했던 그는 바로 그의 심정을 나에게 고백했다.

아무 예고 없이 우리 집 앞에서 기다리질 않나, 꽃을 사들고 와서는 내 여자 친구들에게까지 선물하지 않나,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하지 않나, 난생 처음 받아보는 그런 구애가 처음에는 설레기도 했지만, 처음부터 내 마음은 정해져 있던 터라 갈수록 나는 싸늘해져갔다. 그래서 어느 날인가, 그에게 톡 쏘아붙였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은 코스모스야! 그러니까 이제 꽃집에서 파는 꽃, 그만 사와!":

머쓱해진 그는 그 날로 꽃 선물은 그만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S는 바닷가로 놀러가자고 끈질기게 제안해왔다. 그의 거머리 작전에 지칠 대로 지친 나는 다른 친구들도 같이 가면 가겠노라고 할 수 없이 따랐다.

아직 초보운전이었던 나를 대신하여 S가 내 차를 운전했고, 우리의 들러리(?)들은 뒷자석에 앉아서 동해안 국도를 달렸다.

한참 가다가 갑자기 S가 급브레이크를 밞는 게 아닌가? 그러더니 후진을 한 50m 정도 좍~~~하는 것이었다.

차에서 내린 S는 길가에 핀 코스모스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고는 그 코스모스 한 송이도 아닌 한 포기를 뿌?리?째! 뽑아들더니 나에게 불쑥 내밀며 하는 말. "너 코스모스 좋아한댔지? 이거 너 가져!"

뒷좌석에 앉아 있던 친구들은 요절복통 난리가 났다.

"코스모스도 생명이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뿌리째…흙도 안 털고…."

결국 S는 나의 마음을 갖는 데 실패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여 두 아들의 아버지가 되어 잘 살고 있다. 나 또한 S만큼 터프하지는 않지만 다정하고 성실한 신랑을 만나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다.

코스모스를 뿌리째 뽑아주던 그날의 그 추억을 생각하면 아직도 내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좋아하는 여자를 위해 코스모스를 발견하고는 급히 후진하여 그 꽃을(흙도 안 털고 뿌리째) 뽑아 주던 순수했던 그. 비록 매몰차게 그를 밀어냈지만 한창 빛났던 20대에 그렇게 재미있고 아름다운 추억을 선사해준 S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지금도 우리 아이들 아빠는 코스모스를 보면 이렇게 말한다.

"와, 나도 코스모스 뿌리째 뽑아 주까?"

서영경(대구 달서구 상인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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