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저자와의 대화] '카불의 사진사' 정은진

2007년 여름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인 인질사태가 발생했을 때 짙은 선글라스와 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 현장 상황과 사진을 국내 일간지에 기고한 기자가 있었다. '김주선'. 이 이름은 가명이었다.

포토 저널리스트 정은진.

그는 얼굴 가리고 필명 쓴 이유에 대해 "내가 아프가니스탄에 가 있다는 것을 부모님이 아셨으면 심장마비 걸리셨을 것이다. 부모님은 내가 인도에 갔다 온 것으로 알고 계신다"고 했다.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아프가니스탄은 공포의 땅이었고 정은진은 환갑 넘긴 부모님께 충격 주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김주선이라는 필명에 대해 "가능한 평범한 이름, 그래서 각인되지 않을 이름을 생각했다"고 했다.

정은진은 지구촌 분쟁과 재난 현장을 뛰어다니는 프리랜서 기자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인이 납치되자 잠시 서울에 머물던 그는 곧 아프간으로 날아갔다. 2004년 12월엔 동남아 쓰나미 사진으로 뉴욕타임스 1면을 장식한 바 있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미국 선교사의 사진이 2006년 5월 타임지 아시아판 표지로 실리기도 했다.

2008년 3월 현재 정은진은 내전과 인종청소로 피폐해진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을 누비고 있다. 적도 아래, 낮 기온이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곳이다. 더운 날씨는 사람을 지치게 하고 말라리아는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다. 정은진은 이곳에서 카메라와 수첩 들고 80만 난민과 이들을 돕는 UN 및 NGO들을 좇고 있다.

몇 통의 e메일로 아프리카의 정은진과 이야기 나눴다. 현지 인터넷 사정이 나빠 약속한 시간에 답을 얻지 못해 마음 졸이기도 했다. 정은진은 마지막으로 보내온 e메일에서 '열흘 일정으로 전화도 인터넷도 통하지 않는 시골로 들어간다'고 밝혔다.

정은진은 "콩고민주공화국 사람들이 사진촬영을 아주 꺼리는 데다 기자에 대한 불신이 매우 커 취재에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내전과 전쟁이 계속된 지난 14년 간 수많은 구호단체와 기자들이 다녀갔지만 삶의 질은 나아지지 않았고 평화는 유지되지 않았다. 그 불만이 기자들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기자들에 대한 불신이 이처럼 팽배한 곳은 처음이다"고 취재의 어려움을 전했다. 특히 사진 촬영 때는 대다수 콩고인들이 돈을 요구해 비용부담이 엄청나다고 했다. 그는 비용 문제가 아니더라도 콩고는 사진취재가 힘든 곳이라고 전했다. 기자증이 3개나 필요하고 물가는 아주 비싸다. 분쟁지역이라 UN과 NGO, 서방 기자들이 많이 찾아왔고 현지인 일당과 외국인 숙박비가 엄청나게 올랐다는 것이다.

"콩고에서는 한달 정도 르포 작업할 예정이다. 그러나 사진촬영이 너무 어렵다. 답답하다. 어쩌면 콩고에서의 취재는 그다지 성과를 내지 못할 것 같다. 그러나 교훈을 얻는 시간은 될 것이다."

그는 당장 성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교훈은 얻을 것이라고 했다. 어떤 장소, 어떤 환경에서도 '완전한 패배는 없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는 어떤 외신기자와 경쟁해도 자신있다고 했는데 그 상대가 사람이 아니라 나쁜 조건이라고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정은진은 답을 짧게 했다. 이런 식이다.

'음식을 가리지 않는가? 가리지 않는다.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땅에서 견디기 어렵지 않은가? 어렵지 않다. 사건사고 현장을 걷는 게 두렵지 않은가? 두렵지 않다. 입에 안 맞는 밥을 먹다가 숟가락을 던져버리고 싶은 적이 없었나? 없었다'

그는 또 여러 질문 중에서 자신이 대답하고 싶은 것만 답했다. 답하기 싫은 부분은 '통과'라고 간단히 넘겼다. 자신이 쓴 책에 나와 있거나 다른 언론과 인터뷰에서 했던 답은 두 번 말하지 않았다. 한번 했던 대답, 설령 책에 나와 있는 내용이라도 물으면 다시 답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녀는 답하지 않았다.

몇 장의 사진을 보았지만 공통적인 느낌을 찾을 수 없었다. 이목구비는 같았지만 각 사진의 이미지는 모두 달랐다. 차갑거나 사납거나 아름답거나 무심하거나 이도저도 아니면 짙은 안경과 모자로 가린, 그래서 알 수 없는 얼굴이었다.

그는 대학시절 동양화과에 다니면서 사진 수업을 들은 것이 계기가 됐고 뉴욕대에서 사진을 전공했다고 했다. 졸업작품을 찍기 위해 중국에서 탈북자를 취재했다고 했다. 이후 'LA 타임스' '뉴스데이' 등 미국 언론에서 일하기도 했다.

근무시간을 묻는 질문에 정은진은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라고 답했다. 보도 사진작가의 삶에 사생활은 없다고 했다. 편한 생활을 원한다면 성공을 버려야 하며, 성공을 원한다면 힘들게 살아야 한다고 했다.

정은진은 사진계에서 성공하고 싶다고 했다. 기질적으로 떠돌이냐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그는 먼 곳, 분쟁지역을 찾아다니는 이유에 대해 '먼 곳이 좋아서가 아니라 국제 뉴스를 좇아 다닐 뿐'이라고 했다. 철학적 의미를 담은 질문 '먼 곳'에 그는 물리적 의미의 '먼 곳'으로 답했다. 그의 인식세계는 철학적이라기보다 과학적이고 사실적인 듯했다.

정은진은 아프리카로 출국하기 전 아프가니스탄에서 1년 동안 촬영하고 기록한 '카불의 사진사'를 출간했다. 그는 "아프간의 현실을 한국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또 한국의 젊은이들이 이 책을 읽고 좁은 땅을 벗어나 세계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고 책 쓴 이유를 밝혔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고 '한국사람'이라고 했다. 무심히 뱉은 말이겠지만 이런 말투는 그가 한국에 갇혀 있지 않음을, 한국을 여럿 중 하나로 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카메라는 흔히 사실을 그대로 기록하는 듯하지만 그렇지 않다. 카메라가 포착한 현장은 사실이지만 그 현장을 그 시점에, 그 각도로, 그런 정도의 노출로 바라보는 것은 사람의 시선이다. 그래서 정은진의 사진은 사실이며 또한 정은진의 시선이다. 그는 아프리카를 혼돈이며 아픔을 지닌 땅이라고 했다. 그의 사진이 시끄럽고 아픈 것은 그 때문이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 정은진은…

1970년생. 서울대 동양화과·뉴욕대 사진학과 졸업.'월드 픽처 뉴스(World Picture News)'전속 기자. 뉴욕타임스·LA타임스·보스턴 글로브 등에 사진기고. '아프간 산모사망률: 카마르 스토리'로 세계 최고 권위의 '페르피냥 포토 페스티벌' 그랑프리 수상.

아프간에서 썼던 일기를 바탕으로 '카불의 사진사' 2월 출간. 이 책은 2006년 8월 16일부터 교민 강제 철수 명령으로 카불을 떠났던 2007년 8월 10일까지 촬영하고 기록한 아프간 현장 보고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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