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동창생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학창 시절 친하기는커녕 낯모르고 지냈던 동무들이 더 많다. 그러나 이들이 다시 친해지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정서적 공감대' 덕분이다. 함께 배우진 않았지만 '독사'나 '미친개'로 불리던 선생님을 기억하고, 어울려 놀진 않았지만 운동장 구석에 서 있던 '느티나무'를 떠올린다.
이는 '야한 얘기', 속칭 'Y담'과도 연결된다. 서로 감추지만 누구나 다 아는 얘기. 남의 섹스는 잘 몰라도, 섹스를 어떻게 하는지는 다 안다. 'Y담'은 바로 그 같은 공통된 정서를 교묘히 파고든다. 동서양과 고금을 막론하고 'Y담'의 코드가 통할 수 있는 이유다.
명사(名士)들 중에는 'Y담'을 적절하게 구사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서먹한 자리를 부드럽게 바꾸고 친밀감을 더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입담 좋은' 명사들은 수십개의 레퍼토리를 메모하거나 기억한 뒤 유효적절하게 내놓고, 불쾌감을 주는 음담패설로 선을 넘지 않는 게 공통점이다. 명사들에게 Y담은 리더십과 성공의 처세술일 수도 있는 셈이다.
◆명사들의 윤활유, Y담
지난달 29일 낮 대구 수성구 모 한정식당. 김범일 대구시장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시 정책에 관한 다소 딱딱한 얘기들이 30분쯤 오간 후 한 참석자가 김 시장에게 권유했다. "시장님, 'Y담'에 도통하셨다는데 한 구절 해 주시죠." 마치 기다렸다는 듯 김 시장이 엷은 미소를 띠며 말문을 텄다. "그럴까요?"
이야기 보따리가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어떤 도시에 불륜이 굉장히 잦았어요. 주민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신부님을 찾아 고해성사를 하는데 매일 '불륜' 얘기만 하는 거예요. 듣기 거북했던 신부님이 앞으로는 '불륜'이라는 말 대신 '자빠졌다'는 표현을 쓰라고 했죠. 그런데 이 신부님이 다른 곳으로 떠나면서 새 신부님한테 인수인계를 하는데 '자빠졌다' 얘기를 깜박 잊고 안 한 겁니다. 하루는 시장이 신부님을 찾아왔는데, 신부님이 한탄을 했습니다. '여기는 도로 사정이 굉장히 안 좋은가봐요.' 시장이 되물었죠. '무슨 말입니까. 도로 포장이 얼마나 잘 돼 있는데요.' 신부님이 대답했습니다. '하루에도 몇번씩 사람들이 자빠지는데 시장 사모님도 어제 두번이나 자빠졌다니까요.' 그랬답니다." 순간 좌중에 폭소가 터졌다. 분위기가 '유들유들'해졌음은 물론이다.
김 시장의 'Y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한밤 중 지하철에 두 수녀님이 탔는데 아주 젊고 잘 생긴 남자가 두 수녀님 사이에 앉았답니다. 그런데 이 남자가 꾸벅꾸벅 졸았대요. 이 남자가 젊은 수녀님 쪽으로 기우니 젊은 수녀는 '하느님, 저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소서'하고 기도를 했답니다. 그런데 이 남자가 나이 많은 수녀님 쪽으로 기우니 늙은 수녀가 기도하길 '하느님, 당신 뜻대로 하소서' 그러더래요." 한두가지로 끝날 줄 알았던 김 시장의 Y담은 이어졌다. "아까 수녀님이니, 이번에는 목사님입니다." 김 시장의 Y담은 분야를 넘나들었고 무려 15개가 넘는 유머들이 쏟아졌다.
지역 인사들은 김 시장을 'Y담의 천재'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지난해 2011 대구육상경기대회 유치 활동 당시, 대구를 방문한 실사단과의 접대 자리에서 유창한 영어로 'Y담'을 펼쳐 어색했던 분위기를 한방에 풀어냈던 일화도 유명하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나 조해녕 전 대구시장, 김홍식 금복문화재단 이사장, 임내규 전 산업자원부 차관, 류시헌 전 매일애드 사장 등도 유쾌한 'Y담'으로 이름이 높다.
◆왜 'Y담'일까
명사들이 Y담을 꿰차는 이유는 분위기를 부드럽게 이끌 수 있고, 친밀한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모임의 리더가 넥타이를 풀고 유머를 펼치면 동석자들은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 또한 상대방에게 뭔가 부탁하거나 요청해야 하는 상황일 경우 시의적절한 'Y담'을 곁들이면 긴장감을 확 줄일 수 있다.
임모(55) 변호사는 지난 2002년 모 지역 고검장 재직 당시 간담회가 있는 날이면 미리 참석자들에게 Y담을 준비해 오도록 부탁한 것으로 유명했다. 참석자들끼리 돌아가며 'Y담'을 풀어내고 웃으며 분위기를 유도했다는 것. "명색이 간담회인데 진지한 얘기는 한마디도 안 한다"는 불만이 나오기도 했지만 간담회가 끝나면 훨씬 더 친밀해진 건 사실이었다. 임 변호사는 "강연을 할 때 참석자들의 졸음을 쫓거나 딱딱한 분위기를 풀어낼 때 Y담이나 우스갯소리를 한다"며 "일단 웃음이 터지게 되면 분위기가 풀리고 상대방이 어떤 부탁이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류시헌 전 매일애드 사장은 "술자리나 강연 등을 할 때 사람들의 반응이 시큰둥하거나 가라앉을 때 터뜨리면 집중력이 훨씬 높아진다"며 "일단 시선을 끌어당기는데 성공하면 전체적인 분위기를 마음먹은 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했다.
◆'Y담'을 잘 하려면
모르면 못한다. 언제, 어느 장소에서든 적당히 꺼낼 수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명사들은 어떤 자리에서 듣거나 접한 'Y담'은 꼭 메모를 하는 습관이 있다. 국회 입법차장을 끝으로 퇴임한 한기찬(58) 변호사는 재밌다 싶은 Y담은 전용 수첩에 꼬박꼬박 메모를 해놨다가 외부 강연이나 모임에서 써먹으며 좌중을 웃긴다. 화자가 먼저 웃거나 분위기 파악을 못해도 낭패다. 손봉균 국토지리정보원장은 "'Y담'은 말하는 분위기나 제스처에 따라 웃길지 썰렁할지가 결정되기 때문에 시간 투자를 많이 해야 한다"며 "'Y담'을 잘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들은 내용을 메모한 뒤 혼자 말하는 연습을 하기도 한다"고 했다.
도를 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야한 농담'과 '음담패설'의 경계는 구분짓기 쉽지 않다. 웃음을 주는게 'Y담'이지만 도를 넘었다간 추잡한 외설로 변질돼 오히려 자신의 품위를 떨어뜨릴 수도 있는 탓이다. Y담과 유머를 모은 '봉수야 그만 좀 웃겨'라는 책을 내기도 한 임내규 해사유머경영연구원장(전 산업자원부 차관)은 "성에 관한 농담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원초적이며 공통적인 경험이기 때문에 웃음의 소재가 되는 것"이라며 "하지만 경험을 공유해야지 상스럽거나 추잡한 표현을 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 Y담의 유래
'Y담'은 사실 일본식 표현이다. 일본에서는 '술좌석에서 함부로 떠드는 말'을 일컬어 '와이단(わいだん)'이라 하는데 일제 강점기에 영어 알파벳으로 잘못 알아듣고 Y담으로 변형된 것이다. 한자로는 '함부로 猥'(외) 자에 '말씀 談(담)'자가 붙었다. 비슷한 우리말로는 '저속하고 품격이 낮은 말이나 이야기'를 뜻하는 육담(肉談)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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