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역 학부모들의 사립고에 대한 믿음은 가히 맹목적이다. 오죽하면 집값 떨어진다며 신설 공립고 반대 시위를 벌일까? 유명 사립고에만 갈 수 있다면 '맹모삼천지교'가 무색할 정도다. 취재 중 만난 한 아버지는 "아이를 수성구 사립고에 못 보내는 것은 부모의 죄"라고 극단적 표현까지 썼다. 공교육 실망감이 공립고에 대한 집중포화로 옮아간 느낌마저 든다. 언제부터 공립고와 사립고라는 이분법적 비교가 시작됐고 그 잣대는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이런 현상이 빚어지는 이유와 그 실체를 알아봤다.
◆대구는 '평준화' 지역이다?
지난 2007학년도 수학능력시험 성적을 분석한 결과를 보자. 언어 1등급 및 3등급, 수리(나) 1등급 및 3등급, 외국어 1등급 및 3등급을 차지한 학생비율(응시자 대비 등급별 학생수)로 학교간 순위를 매겨본 결과, 상위 1~10위를 수성구 고교가 싹쓸이했다. 이들 중에는 공립도 있고 사립도 있다. 달서구 역시 사립고 성적이 비교 우위였지만 사립고가 없는 대곡지구에선 공립고 성적도 우수한 편에 속했다. 쉽게 말하면, 수성구 학군이 역시 공부를 잘했지만 예외가 있었고, 다른 지역도 공'사립을 나눠 말하기 힘들 정도로 엎치락뒤치락하는 양상이었다. 이런 이유에 대해 입시학원 및 시교육청 관계자들은 한마디로 '자원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수성구 중에도 몇해 전 신설된 모 공립고는 유난히 성적이 떨어진다. 이유는 동구에서 배정된 신입생이 많기 때문. 입시 관계자들은 이 학교를 '오리지널 수성학군이 아니다'고 표현한다.
대곡지역 공립고 성적이 좋은 이유는 주변 생활수준도 높고, 과거 내신반영비율이 높았을 때 수성학군을 피해 전학간 우수 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이며, 타지역 일부 사립고는 우수 학생들이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취재 중 만난 수성구 사립고나 다른 지역 공립고, 시교육청 관계자, 입시학원 관계자 모두 사립고가 공립고보다 뛰어나다는 말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은 이렇게 입을 모았다. "고교간 학력격차 원인의 80%는 신입생 자원이 다른 것 때문이다. 학교 및 교사의 비중은 20%도 안 된다. 학교 역할이 미미하다는 뜻이 아니라 모두들 열심히 하다 보니 출발점의 차이를 뒤집기가 힘들다는 뜻이다. 수성구의 최고 명문 사립고도 다른 지역에 옮겨놓으면 절대 그만한 성적을 낼 수가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신입생 성적은 얼마나 차이가 나는 것일까? 달서구 사립고 이모(45) 교사는 "지역간 또는 학교간 '자원'의 차이가 비교조차 못할 만큼 크다"고 했다. 고교 입학 직후 신입생들은 같은 문제의 배치고사를 치른다. 고교별 신입생 학력을 비교하는 첫 잣대. 일반계 고교 신입생을 2만8천명이라고 볼 때, 배치고사 성적 1등급(상위 4%)은 약 1천120명이다. 대구지역 일반계 고교를 60개로 잡으면 학교당 평균 1등급 학생 18명이 배정돼야 '평준화'인 셈이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이 교사는 "신입생 자원이 좋을 때라도 1등급은 5명 안팎이다. 수성구 일부 사립고에는 100명 가까이 몰린다. 솔직히 말해 명문대 진학 잠재 수요가 1대 20이 넘는데 어떻게 두 학교를 비교하겠느냐"고 했다. 대구시교육청 손병조 장학담당 장학관은 "비수성학군 고교에 배치고사 1등급이 5명 정도 갔다면 제법 많이 간 셈이다. 한명도 없는 학교가 수두룩하다"고 했다. 이 수치만 본다면 분명 대구는 비평준화지역이다.
◆분위기가 다르고, 교사도 다르다?
복잡한 숫자 이야기는 그만두고, 이제 속내를 이야기해 보자. 앞서 내용은 분명 공립과 사립의 현격한 차이는 없고, 오히려 입학할 당시 신입생 성적 차이가 학교간 격차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쉽사리 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수성구에서 국공립고인 경북고나 대구여고가 그나마 잘하는 것은 시교육청에서 고교 배정할 때 일부러 우수한 학생들을 몰아주기 때문이다." "달서구에서 그나마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결국 사립고 아닌가." "확실히 사립은 분위기가 다르다. 교사들이 입시지도를 제대로 못하면 욕도 먹고 같은 재단내 시골학교로 쫓겨가기도 한다더라." "공립은 그저 열심히 하는 시늉만 낼 뿐이다."
하나씩 풀어헤쳐보자. 몇해 전 시교육청 모 국장이 대구고 교장으로 내정됐다. 그해 대구고에는 인근 중학교 전교 1~10등까지 싹쓸이 배정이 이뤄졌다는 소문이 돌았다. 시교육청 손병조 장학관은 이렇게 말했다. "공립고에 우수 자원을 미리 배정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컴퓨터로 추첨하기 때문에 조작할 수도, 조작해서도 안 된다. 몇해 전 자료이기는 하지만 배치고사 1등급 기준으로 경북고에 50여명, 경신고와 정화여고에 각 80여명이 배정됐다. 정보를 완전히 공개할 수 없어서 생겨나는 루머일 뿐이다."
달서구에서 사립고 성적이 좋은 것은 사실이다. 달서구 지역 공사립학교의 2007년 수능 성적(상위 1, 3등급 비율)을 비교해 봐도 공립 7개 고교 중 5개 고교의 성적은 각 영역별로 대구 전체 56개 고교 중 30~50위를 차지한 데 비해 사립 7개 고교의 성적은 10~30위권을 차지했다. 성서지역 한 중학교 교사는 "상위권 학생들의 사립고 선호도가 매우 높다. 특히 남학생은 영남고와 대건고, 여학생은 원화여고에 대한 선호도가 가장 높다"고 했다. 아무리 추첨이지만 상위권 학생들이 많이 지원하면 그만큼 우수한 자원들이 사립고에 몰린다고 볼 수 있다. 인근에 사립고가 없는 대곡지역 공립고의 경우, 다른 지역 공립고에 비해 성적이 매우 좋은 편이다.
사립고 교사들이 열심히 한다는 것도 맞는 말이다. "임용고사를 치른 공립교사 자질이 분명 우수하지만 5년, 10년 후에도 여전히 비교 우위라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라고 입시학원 관계자가 말했다. 사립의 경우 제대로 못하면 재단내 다른 학교로 전근 보내고, 좋은 성적을 내면 금전적 보상도 이뤄진다고 했다. 이에 대해 사립고 관계자들은 "터무니 없는 이야기다"며 펄쩍 뛴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공립고 교사의 전문성이 일부 떨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대구 일반계 공립고 교사 중 40%는 중학교나 실업계 교사로 충원하기때문에 신설 고교인 경우, 교사가 자리잡기까지 처음 3, 4년간 학생들이 '희생'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 하지만 사립 역시 신규 교사의 적응기간이 필요하고, 아울러 임용고시를 통해 들어오는 공립 교사 자질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그래도 우리 아이는 사립고에 보내야지!
여기까지 읽은 학부모 중에 "그렇다면 굳이 사립 보낼 필요도 없고, 수성구 학교라고 용 빼는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오히려 앞서 취재한 내용을 들려주자 학부모들은 "그렇다면 무조건 수성구로 가야겠네. 천막을 치고 살더라도 수성구에서 살아야 하는거 아냐? 아무래도 공부 잘하는 아이들 곁에 있으면 분위기가 좋을 거 아냐"라고 반응했다.
근원지를 알 수 없지만 수성학군 사립고의 명성은 밖으로 퍼져나가면서 '전설'이자 '신화'로 변신하고 있다.
한 학부모는 이렇게 말했다. "수성구 한 사립고는 영어 하나를 가르쳐도 문법, 회화, 독해 등 영역별로 전문 교사가 가르친다고 들었다." 하지만 해당 학교는 타 학교와 아무런 커리큘럼이나 교습방법의 차이가 없는 것으로 취재 결과 확인됐다. 오히려 이 학교 3학년 영어 교사는 "마치 학원처럼 가르쳐서 성적이 좋다는 말을 듣고 쓴웃음만 지었다"고 했다.
우스개처럼 떠도는 이야기 하나. 수성구 초등학교에서 '해리포터' 원서를 보면 "아직도 그거 읽고 있냐?" 또는 "몇번째 읽는거냐?"는 말이 나오지만 다른 곳에서는 "그래, 너 잘났다" 또는 "읽으면 무슨 소리인지는 아느냐?"는 비아냥을 듣게 된단다. 수성구 모 중학교는 수업 중에 졸거나 잡담을 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고 오히려 교사가 학생의 물음에 명쾌하게 답하지 못하면 실력없다고 찍힌단다. 반면 다른 지역은 졸거나 잡담하는 학생들을 일일이 지적하다 보면 수업할 시간도 없단다.
하지만 웃어넘길 일은 아니다. 한 학부모는 "옆에서 공부하는 학생이 우수하면 보고 듣는 게 나아도 낫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입시학원 한 강사는 "우수한 학생이 우수한 교사를 만든다. 학생 학력이 높으면 그만큼 교사 긴장감도 높아지고 수업 충실도도 높아진다. 이런 수업을 듣다 보면 중위권 학생들의 실력도 높아지기 마련이다. 학력의 선순환이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아울러 사립고가 공부를 많이 시키는 것도 사실이다. 옆에 공부 잘하는 아이가 있어서 자극도 받고 경쟁심도 부추길 수 있다는 말도 맞다. 하지만 전교조 대구지부 천재곤 사무처장은 이렇게 말했다. "작년에 고3 담임을 하며 영어를 가르쳤다. 1년에 부교재 3권을 하려면 시간이 모자랄 정도인데 수성구 사립고는 6권을 한다고 들었다. 대충 건너뛰기식으로 수업이 진행되고 나머지는 학생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상위권 학생들은 어떻게라도 따라가겠지만 중하위권 학생들은 멀뚱히 볼 수밖에 없다. 그래도 3권 보는 것보다 6권 보는 게 낫지 않느냐고 말한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수성구 입시학원 관계자는 "갈수록 대학입시에서 내신실질반영비율은 낮아지고 있다. 해가 갈수록 특목고와 수성학군 인기는 높아질 것이다. 공'사립 차이가 없고, 수성학군이라고 특별한 게 아니라고 아무리 떠들어도 소용없다. 그럴수록 더 몰릴 것이다. 정말 문제다"라고 말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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