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처에 공립고가 생겼다고 해서 아파트값이 몇천만원이나 떨어졌다면 누가 믿겠습니까? 설마 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대구에서 아파트값은 고등학교가 결정한다고 보면 됩니다."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공교육 불신이 커지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공교육 내에서도 공립고와 사립고를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엇갈리고 있다. 수성구 만촌동 모 대단지아파트의 경우 인근에 공립고가 들어선다는 소식에 주민들이 반대 시위에 나섰고, 결국 입주 후 1년여 만에 공립고가 들어서면서 119㎡ 매매가가 곧바로 추락했다.
이곳 아파트의 위치가 나쁜 것은 아니다. 수성구 학군 중에서도 가장 선호하는 모 사립고와 직선 거리로 1.5㎞. 신설 공립고와도 1.5㎞로 차이가 없다. 그러나 통학 거리 및 편의성으로 고교를 배정하는 시스템상 공립고 배정 가능성이 훨씬 높다. 인근 사립고는 2007학년도 수학능력시험에서 영역별 응시자 대비 1~3등급 비율이 대구 전체 고교 중 1, 2위를 다퉜지만 공립고는 30~40위권에 머물렀다. 이런 이유로 공립고 진학을 기피하는 현상이 가속화했고, 자녀를 둔 부모들이 떠나면서 아파트값은 떨어졌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아파트 주변 공립고교 유무가 아파트 가격에 119㎡의 경우 1천만~2천만원, 138㎡ 이상 중대형 아파트는 2천만~3천만원 정도 영향력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만촌동에서 부동산 중개업소를 운영하는 권오인 대구경북부동산학회 감사는 "이 아파트단지는 입주한 지 2, 3년 후에 가장 집값이 높았는데 119㎡가 2억8천만~3억1천만원에 거래됐고 138㎡의 경우 4억3천만~4억5천만원 사이에서 거래됐다"며 "하지만 최근에는 119㎡와 138㎡가 각각 2억3천만~2억4천만원, 3억3천만~3억6천만원에 거래된다"고 했다. 권씨는 공립고교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119㎡는 3천만원, 136㎡는 7천만~8천만원 정도 올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공립고를 기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공부를 많이 시키지 않는다'는 불만 때문이다. 공립고가 상대적으로 진학 지도나 학력 향상에 관심을 덜 기울인다는 생각을 학부모들은 갖고 있다. 사립고 교사들은 명문대 진학률이 학교 명성에 영향을 미치는데다 사학재단 측의 요구도 강하기 때문에 입시 성적에 사활을 건다는 것이다.
고1, 중2 두 아들을 둔 남모(43·여)씨는 "공립고 교사들도 젊고 우수하지만 교육청 방침이라며 보충수업도 줄이고 자율학습도 적게 시키는 것 같아서 불안하다"고 말했다. 고1 아들이 중구 모 공립고에 다닌다는 박모(44·여)씨는 "수성구 사립고를 1지망으로 지원했는데 결국 집 근처 공립고에 배정됐다"며 "학교 분위기가 자유롭고 두발이나 복장에 대한 제재가 심하지 않아 아이가 좋아하지만 입시 지도나 수업 방식은 사립고를 못 따라가는 것 같아 불만스럽다"고 말했다.
이처럼 공립고 기피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편법도 판치고 있다. 같은 학군 내에서도 위장전입을 하거나 아예 경산 등지로 전학간 뒤 다시 돌아오는 방법까지 동원되고 있다. 수성구 지산동에 사는 J씨(43·여)는 범어동이나 황금동, 만촌동으로 주소를 옮길지 고민 중이다. 같은 수성구라도 1지망 학교 추첨 배정에서 떨어질 경우 인근 신설 공립고로 배정될 확률이 크기 때문. J씨는 "다행히 큰 아이는 사립고에 배정됐지만 둘째가 공립고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만촌동 친척 집으로 주소를 옮길 계획"이라고 했다.
아예 타 지역으로 전학을 갔다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관할 구역이 다른 지역교육청의 경우 3개월 이상 학교를 다니면 전학이 가능하기 때문. 지난해 자녀가 수성구 모 공립고에 배정됐던 A씨(44)는 경산의 모 고교로 전학을 갔다가 지난 2월 사립고로 전학을 왔다. A씨는 "학교마다 전학이 가능한 T/O가 많지 않기 때문에 엄마들이 서로 치밀하게 정보 교류를 하며 인원이 나오길 기다렸다가 재빠르게 전학을 한다"며 "중학교도 이런 현상이 다르지 않아 1년 동안 학교를 3군데나 옮기는 경우도 봤다"고 말했다.
공립고가 사립고에 비해 성적이 떨어진다는 것은 사실일까. 그러나 취재진이 확인해 본 결과 입시 성과에서 공·사립 구분은 결정적 변수가 아니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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