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난새(61)는 매우 바빠 보였다. 꽉 찬 스케줄 때문이었다. 지난 6일 오전 9시 인터불고 호텔 로비에서 만나자마자 인사도 잠시 악수를 한 것뿐이었다. 그러나 인터뷰를 많이 해본 듯 이른 봄기운이 느껴지는 아침 햇살을 맞으며 렌즈 앞에서 그는 맑게 웃어보였다. 경륜이 주는 여유로움. 깔끔하고 지적인 모습, 평소에 알려진 모습 그대로였다.
-대구와 인연이 많은 것 같습니다.
"대구에서 연주 활동을 많이 했어요. KBS교향악단 지방 순회공연 때 대구에 많이 왔고, 1992년 대구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창단 공연 지휘도 맡았습니다. 2005년 계명대 공연, 지난해와 2006년 경북예고 학생들과의 연주회 등도 기억에 남습니다."
-많이 바쁘실텐데요
"정말 쫓겨 다닙니다, 사실은. 작년에 140회 연주했습니다. 제가 만든 유라시안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유라시안필) 공연이 한 100회, 경기필하모닉이 한 35~40회, 객원지휘 등 스케줄이 많아요."
◆클래식 음악 대중화로 명예박사
-계명대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제의한 건 언제인가요?
"작년 12월 말 연락을 받았습니다. 저로서는 너무 놀라운 제안이었죠. 3년 전에 계명대에서 연주한 적이 있습니다. 포스코가 후원해 유라시안필하고 1년에 10개 대학을 방문하는 '캠퍼스 심포니'란 시리즈의 하나였습니다. 채플에서 공연의 분위기가 좋았고, 끝나고 리셉션이라든지 총장, 이사장 등의 배려가 딴 학교와는 달라 '명문 학교'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런 인연뿐인데 저의 활동에 대해 인상적으로 보시고 학위를 주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명예박사 학위 수여도 처음입니다."
-그동안 청소년 음악회, 해설이 있는 음악회 등으로 많이 알려졌고, 음악을 대중화하는 데 일조를 했습니다.
"그렇죠. 나는 머무르지 않는 사람입니다. KBS에 있다가도 수원시향으로 갔다던지, 아무런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유라시안필이라는 민간 오케스트라를 창단해서 정상의 오케스트라로 만든 것도 그런 것의 일환이었습니다. '우리가 대단한 연주자니까 구경와라'가 아니라, '나를 위한 청중'이 아니라 '우리 음악계를 위해서 청중 만들기' 이런 식의 일련의 일을 계속해 왔던 거죠. 내 권위를 내세우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우리 음악계 발전에 내가 도와줄 수 있을까?' 저 나름대로 신념을 갖고 일을 했어요.
-'청소년 음악회' 등의 활동이 훗날의 음악팬을 만들어내는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 이후 한국의 음악은 대중화가 어느 정도 됐다고 생각하시는지요?
"1994년에 시작했어요. 당시 새로운 시도니까 사람들 사이에서 찬반이 있었겠지요. 그렇지만 지금은 음악뿐만 아니라 무용·국악에서 해설이 있는 공연들이 생겼어요. 그렇게 패션(트렌드)이 완전히 바뀐 것은 저의 노력 때문만은 아니고, 우리나라 예술계가 그런 것의 필요성을 느낀 것이 아닐까 해요.
요즘에는 우리 음악교육의 방향에 대해 굉장히 많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무주에서 '오케스트라 아카데미'를 열었습니다. 음악 교육이 독주자, 콩쿠르, 입시 위주로 이뤄지다 보니 '대학만 들어가면 되고 들어가선 공부를 안 한다'는 식이 생각이 팽배해요. 학교 들어가기는 쉬워도 나오기가 힘들어야지요. 독주자가 많이 필요 없는데 막연히 독주자를 키우는 건 선생님들이 자기 편의로 교육을 하는 겁니다. 오케스트라 연주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쳤는데, 그게 성공적이어서 올해도 계속하게 됐어요. 이때까지 '청중'을 만드는 데 노력했다면 이제는 음악가들의 방향을 위해서 힘을 쏟고 싶습니다. 실제로 작년에 유라시안필하고 하버드대, MIT 대학을 방문해서 연주하기로 돼 있던 것을 '유라시안필보다 젊은이들이 가는 것이 낫겠다' 생각해서 서울예고 학생들을 데리고 갔는데, 기립박수가 나오고 난리가 났어요. 그러면 고교생들이 굴지의 대학에 가서 연주했다는 자부심과 자기의 재능을 발휘했다는 자긍심을 가지겠죠. 올해는 두번째로 경북예고와 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내가 방향을 막연히 하는 게 아니라 샘플을 보여줌으로써 우리 음악계 발전에 도움을 주고 싶은 겁니다."
◆창의성 키우는 음악교육 실천중
-한국의 음악을 포함한 교육이 '창의성'을 키우지 않는다고 지적하셨는데요. 대학에 들어가서 실제로 많이 느끼셨나요?
"많이 느낍니다. 저는 오케스트라만 맡아서 하는데 아이들에게 굉장히 프로페셔널한 정신과 방향을 계속 요구합니다. 성적표 위주, 시험 때만 잘하는 음악가를 원하는 게 아니고 어떤 음악·어떤 경우에도 적응력을 키운다든지, 어떤 악보가 나와도 음악을 흡수하는 능력, 이런 것을 더 갖도록 하고 있습니다. 학교 점수로 나타날 수 없는 능력을 더 중요시하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거죠."
-학생들도 처음에는 어렵게 생각했을 것 같은데요.
"아니, 학생들은 굉장히 좋아합니다. 다만, 학교 당국이 자기 방식과 안 맞다고 생각하는데 정말 유감스런 일이죠. 학생들은 바보가 아니니까 어떤 것이 중요한지 아니까 따라옵니다."
-해설이 있는 음악회 등이 기존 음악계 관습과 너무 달라서 음악계에서 천대받기도 했는데,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선생님의 성격이 반영된 것 같습니다.
"그런 거죠. 제 생각에는 '내가 일류 교향악단에 있기 때문에 좋은 지휘자다' 하고 뽐내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내가 있음으로써 교향악단이 더 좋아진다' 이런 것이 사회 변화이지요. 쉽게 말해 '교수 되려고 열심히 연주하다가 막상 교수가 되고 나면 연주 안 한다'는 식 사고는 문제가 있다고 봐요. 나로 인해 학교가 좋아지길 바라고, 나로 인해 오케스트라가 발전하길 바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항상 도전 의식이 생기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경기도립악단과 불협화음도 나온 것 같은데요. 민감한 질문인가요.
"아뇨. 민감한 게 아니라…. 재임용 같은 데서는 아무 문제가 없었어요.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직접 찾아와서 경기필을 부탁했어요. 오케스트라를 짧은 시간에 발전시키기 위해 오디션을 했고 그 과정에서 28명이 나갔어요. 그런 과정에서 약간의 소요가 있었지만, 그게 얼마 전에 법적으로 판결이 났어요. 수석연주자 10명이 단원이 됐으니 대단한 변화죠. 그런 변화가 없이는 발전할 수가 없어요. 노력하지 않고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에게 월급 주기 위해서 막대한 예산이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단원들이 지금은 굉장히 열심히 합니다."
◆책쓰기도 음악 발전에 한몫
-책을 많이 썼는데 평소에 준비하고 있습니까.
"역시 음악계 발전을 위한 노력의 하나입니다. 우리 음악계는 음악 관련 책이 서양에 비해서 적어요. 출판사에서 음악 해설 쪽으로 책을 요구할 때 작곡가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서 커플링(짝짓기)을 했어요. 모차르트-하이든, 베토벤-로시니, 라벨-드뷔시 이런 식으로…. 그런데 지금까지는 번역책이 많았어요. 있는 걸 그대로 해서 옮기면 흥미가 없을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새로운 아이디어로 책이 성공했어요. 나는 아이디어가 더 있어요. 3편, 4편, 계속 준비를 하고 있죠."
-음악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사람들이 음악을 들었을 때 행복감을 느끼는 것처럼 제게도 음악은 그런 거죠. 책을 한권도 안 읽고 공부도 안 하고 살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지식을 얻음으로써 행복해지듯 저는 음악을 들음으로써 행복합니다."
-항상 웃고 계십니다. 선생님의 삶에 대해 감사하면서 사시는 것 같은데요.
"사실 그렇게 말을 하니까 그런데 전 진짜 감사하며 삽니다. 제가 사는데 왜 어려움이 없겠어요? 저도 어떤 때는 난관이 있는데 마지막 순간까지 제가 '이런 어려움도 살아 있으니까 겪게 되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며 자위한다고 하나? 좋은 일에 감사하고, 내가 일이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금난새는?
1947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70년 서울대 음대 작곡과를 졸업한 후 1974년 지휘자가 되기 위해 독일 베를린 음대에 유학해 라벤슈타인을 사사했다. 1977년 카라얀 콩쿠르에서 입상, 1980년 귀국해 KBS교향악단에서 활동했다. 1992년 수원시립교향악단 상임 지휘자로 부임해 클래식 음악 대중화에 주력했다. '해설이 있는 청소년 음악회'를 열어 1994년부터 1999년까지 '전회 전석 매진'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1998년 국내 최초 민간 '벤처 오케스트라'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창단해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06년부터는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예술감독으로 취임했으며, 현재 경희대 음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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