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 반도체가 대만 기업에 반도체 생산 기술을 팔려는 계획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다. 비판적인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앞선 기술을 외국 기업에 제공하면,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여론은 호의적이 아니다. 이 일을 다룬 기사들은 중립적인 '판매'나 '수출' 대신 비난의 뜻이 담긴 '유출'이란 말을 굳이 썼다.
법도 기술의 수출을 억제하는 쪽으로 마련되었다. '산업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은 우리 기업들의 기술들이 많이 유출되어 경쟁력이 낮아진다는 인식에서 나왔다. 이 법률의 규정에 따라 '국가 핵심 기술'로 지정된 산업기술들은 정부의 엄격한 통제를 받는다. 실제로 이 규정에 막혀, 하이닉스는 작년에 비슷한 기술을 수출하려다 실패했다.
정부가 '국가 핵심 기술'을 지정해서 관리하는 일은 언뜻 보기에 그럴 듯하다. 그러나 그런 '기술 민족주의'는 여러 문제들을 안았고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에 해를 입힌다.
무엇보다도, 기술은 되도록 널리 쓰여야 한다는 사실이 있다. 기술은 개발하기는 힘들지만, 얻어서 쓰는 데 드는 추가 비용은 아주 작다. 바로 그 사실 덕분에 인류 문명이 발전했고 우리처럼 뒤진 사회들이 앞선 사회들을 손쉽게 따라잡았다. 그런 기술을 국경 안에 가두겠다는 생각은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다음엔, 기업이 개발한 기술을 정부가 통제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구성 원리에 어긋난다. '국가 경쟁력'이라는 모호하고 계량할 수 없는 가치를 들어 정부가 특정 기업의 구체적 재산권을 침해하는 일은 정당화되기 어렵다. 국가 경쟁력은 해당 기업의 경쟁자들의 이익까지 고려해야 비로소 뜻을 지니는 개념이다. 그것을 들먹이는 것은 시장 경제에서 기업이 다른 경쟁자들의 경쟁력까지 살피면서 영업하라는 얘기밖에 안 된다.
셋째, 산업기술의 관리는 정부의 기능이 아니다. 산업기술은 소중한 재산이므로, 기업마다 열심히 개발하고 더 열심히 지킨다. 이번 일만 해도 그렇다. 만일 대만에 기술을 팔아서 자신이 궁극적으로 손해를 보리라고 판단했다면, 하이닉스가 그것을 판매했을까? 이처럼 시장이 원래 잘 하는 분야에 정부가 나서면, 필연적으로 부작용들이 나온다.
넷째, 기술의 수출을 막으면, 기술을 개발하려는 의욕과 능력이 떨어진다. 모든 창조적 능력은 우물과 같다. 우물에서 물을 길어내지 않으면, 물이 흐려지고 끝내는 물길이 막혀 廢井(폐정)이 된다. 개발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기업들에 넘기고 자신은 그 대금으로 보다 발전된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건강한 자세다. 기술의 발전이 점점 가속되는 현대에서 기술을 끌어안고 묵히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드물다. 해외 기업에 기술을 팔았다는 사실은 기업의 위신을 높이고 기술을 개발한 종업원들에겐 심리적 자산이 된다.
다섯째, 실질적 효과가 없다. 우리 기업들의 기술 수준이 그리 높지 않으므로, 우리 기업이 팔지 않더라도 기술을 공급할 다른 나라 기업들이 있게 마련이다.
아마도 가장 큰 문제는 앞선 나라들에서 '기술 민족주의'가 나오도록 부추길 위험이다. 우리 기업들은 필요한 기술들을 대부분 수입한다. 앞선 나라들이 기술을 팔지 않겠다고 나오면, 우리가 가장 큰 피해를 볼 터이다. 지금 우리가 '기술 민족주의'를 내세우면, 그것이 퍼질 가능성을 키울 뿐 아니라 그것을 꾸짖을 수 있는 도덕적 명분도 잃는다.
'국가 핵심 기술'을 정부가 관리하는 제도는 매혹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마음을 다잡아 '기술 민족주의'의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
복거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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