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장님] 군위읍 서부 2리 이장 이고시씨

경북고 나와 34세부터 시작 주민과 화전놀이 추억 아련...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는데 32년간 이장을 하고 있으니···."

군위읍 서부2리 이고시(66) 이장은 경북도 이·통장 연합회에 등록된 7천701명 중 네번째 장수 이장으로 꼽힌다. 그는 1977년 대구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 고향에 내려왔다가 얼떨결에 이장직을 맡은게 그만 30년이 넘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34세에 이장이 된 그는 이장치고는 경력이 화려한 편이다. 명문고로 이름을 날렸던 경북고(41회)를 나와 중앙대를 졸업하고 대구에서 보험회사에 다니기도 했다. 노태우 대통령 때 실세였던 박철언 전 장관이나 김영구 전 민자당 사무총장 등이 고교 동기생들이다.

이 덕분에 그는 군위군 이장연합회 회장, 경북도 이·통장연합회 수석 부회장, 전국 이·통장연합회 이사를 맡고 있으며, 군위에서는 군의원급 이장으로 통한다. 군청에서도 말발이 먹히는 지역 유지(?)로 알려져 있다. 실제 지난해 군 보건소 이전·신축 문제로 군의회와 집행부가 갈등을 겪는 등 서로 각을 세우고 있을 때 이장연합회원 등을 동원, 군의회를 설득하고 압력을 넣는 등 양면작전을 구사해 보건소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는 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이 같은 활동은 그의 화려한 경력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주위의 평가. 초창기에는 이장 활동도 순탄하지 만은 않았다. 군위읍 경우 도시도 아니고 농촌도 아닌 어정쩡한 지역이기 때문에 처음 이장을 맡았을 때는 역할이 애매해 고민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때 이장으로 임명해 준 서성호 군위읍장의 '부지런한 이장, 주민들로부터 신뢰받는 이장이 되라'는 말을 늘 가슴에 새겨 두고 지금까지 이장직을 원만히 수행해왔다고 회고한다. 서부2리는 현재 250여 가구에 주민 수가 560여명이지만, 처음 이장을 맡았을 무렵에는 300여 가구에 주민이 1천200명에 달해 지금의 웬만한 오지의 면 단위 인구와 맞먹을 정도였다.

30년 넘게 이장을 해온 그는 마을의 대소사와 주민들의 크고 작은 일들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꿰고 있다. "돌이켜 보면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중반까지가 가장 살기가 좋았던 시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동안 숱하게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대통령·국회의원 선거와 마을 주민들의 단합대회인 화전놀이, 군위읍 시외버스터미널 이전과 군위군 이장연합회원 182명에 대한 상해보험 가입 추진 등이라고 한다.

"1980년대 신군부가 정권을 잡으면서 전국적으로 반정부 시위가 이어졌고, 군사정권은 결국 국민의 요구에 굴복해 직선제 개헌을 하게 되었지요. 명색이 서울에서 유수한 대학을 졸업한 사람으로 번민도 많았습니다."

그때 정부와 여당은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전국의 이장들을 앞세워 불·탈법선거를 자행했는데, 당시 시대 상황과 시골 정서상 솔직히 악역을 맡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장들이 고무신과 설탕 밀가루 등을 주민들에게 나눠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부끄러은 일이지만···."

"심지어 돈봉투를 나눠주는 올바르지 못한 역할도 뿌리치지를 못했습니다. 그때는 그랬어요." 아무리 세월이 흘렀다한들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당시 모 군수는 선거 총책을 맡아 이장들에게 돈을 나눠주면서 "돈이 부족하면 언제든지 관사로 오라"고 한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고 한다.

국회의원 선거 역시 비슷한 상황이어서 당시에는 선거를 의식해 이장을 하려는 사람들도 적잖았고, 선거철이 되면 선거 운동원을 하기 위해 이장직을 그만두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그는 또 매년 봄이면 마을 주민들이 위천 강가에서 음식을 장만해 화전놀이를 즐기던 일이 이제는 가마득한 옛 추억이 되어 버렸다고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10여년 전만해도 화전놀이는 마을의 큰 행사로 많을 때는 수백명이 참가하는 성대한 잔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은 주민 구성원들도 전국 각처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많아서 과거와 같은 끈끈한 인정이 사라지고 있다는게 이 이장의 설명이다. 게다가 일부 아파트의 경우 이장이 마을 일로 찾아가도 문조차 열어주지 않는 주민들도 있다고 한다. 때문에 올해부터는 매년 봄 가을 두 차례 거둬들이는 이장 모곡제도 폐지했다고.

"지방선거에 출마하라는 주위의 권유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제 분수를 알고 살아야 말년이 구겨지지 않지요." 그는 "이제는 나이도 있고 해서 마을의 최대 현안인 골목길 정비 등이 마무리되면 이장직도 후배들에게 물려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군위·이희대기자 hdl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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