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늦깎이의 클래식 음악 입문기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는 나는 취미생활도 여기저기 잡다한 영역을 기웃거리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깊이 들어가 본 언저리가 등산과 클래식 음악 감상이다.

클래식 음악에 끌리기 시작한 것은 1999년부터다. 불혹의 나이를 바라보며 시작했으니, 클래식 애호가들 중에서는 늦깎이다. 그 당시 대구 시지동에서 살다가 막 대곡동으로 이사를 가, 앞산순환도로를 이용하여 출퇴근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늦가을 아침, 출근길에 효명초등학교 앞 도로에서 교통신호를 기다리다가 우연히 어느 음악학원 유리창에 적힌 다음과 같은 두 줄의 글귀를 발견했다.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들어보셨습니까?", "드보르자크 첼로협주곡 b단조를 들어보셨습니까?"

클래식 음악이라고는 고등학교 음악 시간에 들어본 것이 전부였던 내가, 아마 그때는 무엇에 홀리기라도 했던 모양이다. 어쩌면 마흔이라는 쓸쓸한 나이의 무게가 나를 클래식 음악으로 이끌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그날부터 그 음악학원 유리창에 적혀 있던 음악을 찾아 음반가게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다행히 같은 학교에 클래식 음악에 조예가 깊은 선생님이 한분 계셔, 나는 그 분을 스승 삼아 클래식 음악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쉽게 입문할 수 있었다.

이렇게 취미생활을 시작한 한 늦깎이 클래식 음악 애호가가 이제는 천매가 넘는 음반을 사 모으고, 좋은 연주를 듣기 위해서라면 서울 나들이도 불사하는 마니아가 되었으니, 클래식 음악의 마력은 정말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사람은 나와 같은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문화 귀족이라느니, 지적 허영심을 지닌 인간들이라느니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클래식 음악은 꼭 부자나 지식인들만 즐길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 주변을 한번 둘러보라. 광고와 영화의 배경음악이나 휴대전화 벨 소리 등 클래식 음악은 이미 우리 일상에 가까이 있다. 물론 외국 유명 교향악단의 공연 입장권은 수십만원씩 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대구시립교향악단의 공연 입장권은 단돈 오천원이면 구할 수 있다. 그리고 라디오의 주파수를 FM에 맞추어두면 하루 종일 공짜로 좋은 음악을 즐길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들께도 여러분의 자녀와 가정을 위해서라도 지금 당장 텔레비전을 끄고 클래식 음악을 틀라고 말씀 드리고 싶다. 클래식 음악은 우리의 정서를 순화하고 머리를 맑게 할 뿐만 아니라 가정과 사회를 부드럽고 평화롭게 만든다. 지난달 뉴욕필의 평양 공연이 있었다. 음악이 북한 인민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북미 화해와 한반도 평화의 디딤돌을 놓는 데 이바지하기를 간절히 빈다.

변준석(시인·영진고 교사)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