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은 한국 농업에 큰 위협이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농업부문 생산 감소액이 연간 7천억∼8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면서 농촌에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이기도 하다. 시대흐름에 맞춰 적극적으로 대처한다면 피해를 줄이는 것은 물론 FTA를 한국 농업 발전의 주춧돌로 삼을 수도 있다. '글로벌 농사꾼'을 꿈꾸며 희망을 일구는 농업현장을 찾았다.
◆고부가가치 창출이 관건
'바뀌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고령군 개진면 오사리에 있는 (주)에그팜 사무실에 가면 '생존'을 강조하는 플래카드가 인상적이다. 겉보기에 그냥 평범한 농촌지역 공장인 이곳은 하지만 국내에서 유일하게 미국에 계란을 수출하고 있는 업체다.
1990년 양계농장으로 출발, 2005년 가공란 유통업에 뛰어든 에그팜은 지난해 미국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고부가가치 제품의 해외수출이야말로 블루오션이라고 판단한 것. 지난해 3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한국우수상품 엑스포'에 참가, 훈제란 등 제품 계약을 하고 지난해 12월 2만달러어치를 처음 선적했다. 수출제품은 홍삼란, 커피란, 죽염란, 구운란, 자연송이란 등 5개 품목으로 미국 농무성(USDA),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다.
조재홍(60) 사장은 "1천만달러 수출을 목표로 일본, 인도, 싱가포르, 호주, 브라질 수출도 추진 중"이라며 "가격도 국내에서는 1판 30알에 4천500원이지만 미국시장에서는 3배 가까운 1만2천원을 받고 있다"라고 소개했다.
경산에 있는 (주)알알이농산도 해외에서 활로를 찾았다. 이 회사의 주력 생산품은 국내 생산량의 40%를 차지하는 경산 대추를 자른 뒤 건조시킨 슬라이스제품. 2006년 슬라이스 대추 특허를 따냈으며 지난해 11월 5천만원 상당을 미국에 수출한 데 이어 올 1월에는 현지 에이전트와 계약을 체결해 5월부터 현지 주류시장에 납품할 예정이다.
지난해 중소기업청 기술혁신형 중소기업에 선정된 이 업체는 지난해 연말 농림부 향토산업육성사업 지원대상에 선정돼 내년부터는 3년간 30억원을 지원받게 된다.
연간 65t의 대추를 가공, 11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전태익(45) 대표는 "대추는 말려서 식용이나 한약재로 먹는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과일처럼 먹을 수 있는 제품으로 개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수출가격도 국내보다 10~15% 정도 더 높다"고 말했다.
청도에 있는 버섯생산업체인 '그린피스' 무역부 사무실의 달력은 전 세계 각국으로 나가는 수출일정으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팽이·새송이 등 하루 30t의 버섯을 생산하는 이곳은 지난해 해외 15개국에 연간 400만달러어치를 수출했다. 단일 농산품으로는 국내 최대 수출기업이다.
외환위기 직후 국내시장의 가격 폭락을 극복하기 위해 해외시장 개척에 나선 그린피스는 지난 2006년 네덜란드에 사무실을 열고 직접 유통까지 하고 있다. 또 유럽, 캐나다에는 현지농장을 추진하고 있다. 박희주(55) 대표는 "농업부문 중소기업으로 해외에 진출하기는 쉽지 않지만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했다"며 "한국산 버섯을 모르는 나라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새로운 시장이 크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글로벌화가 살 길이다
대만은 국산 사과의 유일한 수출시장이다. 하지만 현지 시장점유율은 지난 90년 12%에서 2006년 1%로 급감했다. 반면 경쟁국인 칠레는 같은 기간 8%에서 34%, 일본은 0.6%에서 15%로 점유율이 크게 높아졌다. 연간 10만~13만t을 수입하는 대만시장에서 품질과 가격 모두 경쟁력이 뒤졌기 때문이다.
사과 최대 생산지인 경북은 품질 향상과 공동 브랜드 개발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다. 이를 위해 경북도와 대구경북능금농협은 수출용 명품사과 브랜드 '데일리(DAILY)'를 개발, 지난해 9월 한국과 대만에 상표출원을 마쳤고 사과수출단지에 유기질비료, 물류비 등 우수상품화사업을 지원해 당도 12.5브릭스(brix), 색도 90% 이상의 최고 제품만 수출토록 하고 있다.
또 수출사과의 포장 디자인도 새롭게 개발했다. 'DAILY'는 '매일'이란 뜻이지만 "매일 먹으면 건강하고 즐거워지는 과일'이란 뜻도 담고 있다.
이 같은 노력에 따라 지난해 경북지역의 대만 사과수출은 350t으로 크게 늘었고 올해는 700t을 수출할 계획이다. 경북도는 이와 함께 안동 녹전·임하·임동면에 조성돼 있는 수출단지를 2010년 16곳, 2017년 40곳까지 늘려 1만8천t 수출 대만시장 점유율 20%까지 높이기로 했다. 올해는 영주·봉화·예천에 7억원을 투자, 수출단지를 육성할 계획이다.
유경한 안동시 농축산유통과 수출담당은 "지금까지 지역별로 각각 다른 브랜드를 사용하고 브랜드마다 맛도 달라 대만 소비자들이 혼란을 겪었다"며 "고품질의 차별화된 농산물만이 생존경쟁에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한AS가 경쟁력
주부 이희숙(36·대구 수성구 황금동)씨는 요즘 밥상 차리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지난해부터 집에서 받아 먹고 있는 쌀의 밥맛에 가족들이 대만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씨는 "집 근처에 대형마트도 있지만 쌀만큼은 꼭 주문해서 먹고 있다"며 "가격도 비싸지 않은데다 찧은 지 3일 안에 집까지 배달해줘서 남편이 더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씨가 쌀을 주문하는 곳은 '경북쌀 신유통사업단'. 지난해 김천 건양 미곡종합처리장·의성 한가위 미곡종합처리장, 경북통상이 함께 만들었다. 소비자가 주문하면 햅쌀을 찧어 5kg, 10kg 소포장 단위로 가정까지 냉장배달한다. 쌀이라는 상품에 유통기한, 냉장보관의 개념과 주문배달이라는 방식을 도입한 것.
지난해 4월 사업 시작 이후 지금까지 이용고객은 모두 7천여가구. 아직까지는 수성구 대단위 아파트단지만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차츰 넓혀나가 수도권까지 진출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고객 확보를 위해 구입금액 적립, 사은행사도 추진 중이다.
경북통상 임성호 부장은 "소비자 중심의 주문배달은 최고의 밥맛 유지와 소비자 편리성을 동시에 충족시켜 주는 신개념의 쌀 유통체계로 경북쌀의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대구경북 경제통합이란 흐름에도 부합하는 사업"이라고 말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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