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교단에서] 깨워 주지 말자

"선생님 우리 아이는 8시부터 컴퓨터 공부를 하는데 아침마다 늦게 일어나서 태워줘야 해요. 시간 안에 스스로 일어나지 못하면 태워주지 않는다고 철통 같이 약속을 해놓고 제가 자꾸 태워주곤 해요. 속에 천불이 나서 견딜 수가 없어요.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태워주지 않으시면 되잖아요. 왜 어머니가 약속을 어기면서 속상해 하세요."

"그래도 자꾸 늦게 일어나니까 태워주게 돼요."

"그래 가지고는 늦잠 자는 버릇을 고칠 수가 없지요. 약속을 했으면 약속대로 그냥 두는 게 좋을 듯 싶네요. 다시 한 번 아이와 약속을 단단히 하고는 약속을 지켜보세요."

며칠 전에 학부모들을 상대로 강의를 끝내고 질문 시간에 나눈 이야기다. 교육이란 따지고 보면 아이와 간격을 넓혀 가는 과정이다. 학교에 다닐 나이의 아이는 스스로 일어나서 학교에 갈 수 있도록 하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 지나친 보호 아래서는 자율성이고, 자기 주도적 학습이고 가당치도 않는 말이다.

날마다 깨워주는 아이를 무슨 일로 등교 시간에 맞춰 깨워주지 못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늦게 일어난 아이가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서둘러 학교에 갈까? 어림도 없는 말이다. 깨워주지 않아서 지각하게 생겼다고 별별 불평을 다 늘어놓을 게 뻔하다.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깨워주지 않은 어머니에게 엄포를 놓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되면 제 공부 하러 학교에 가는 게 아니고 부모님 위해서 학교에 가 주는 꼴이다. 학교에 가는 게 아주 대단한 벼슬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럴 때 어머니들은 어떻게 할까?

"네가 늦게 일어나서 누구한테 화를 내니? 얼른 밥 먹고 학교에 가거라."

이럴 어머니가 얼마나 될까?

"미안하다. 엄마가 몸이 안 좋아서 그만 못 깨웠다. 선생님에게 엄마가 밥을 늦게 해 줘서 늦었다고 말씀드려라. 다음부터는 꼭 제 시간에 깨워 줄게. 그리고 이 돈 가지고 가서 쉬는 시간에 빵 사 먹어."

십중팔구는 이렇게 큰 죄인이 되고 말 것이다. 이건 아니다.

늦잠 자는 아이를 날마다 깨워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일어나도록 도와주자. 일주일 정도 시간을 주어 스스로 일어나는 연습을 시키고는 제 스스로 일어나기로 약속한 날부터는 어떤 일이 있어도 깨워주지 말아보자. 하루 이틀 학교에 늦게 가도 괜찮다. 오히려 지각을 하면 아이를 야단 좀 쳐달라고 선생님에게 부탁하는 게 맞다. 그럴 때 어머니는 늦게 일어나서 허둥지둥 학교로 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웃을 수 있다. 뒷문 열고 늦게 들어오는 아이를 보는 담임 역시 학부모님의 부탁을 떠올리면 짐짓 무서운 표정을 지을 수 있다. 즐거운 마음으로. 이런 일이 서너 번만 있어보라. 어떻게 될까? 잠자는 시간을 스스로 당기든지, 시계나 전화기 같은 도구를 써서 일어나는 시각을 알리게 하던지 제 스스로 방법을 찾을 게 뻔하다. 이러면 된 게 아닐까?

'물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라'는 말은 교육에 있어서 영원한 진리다. 과보호는 아이의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적이고말고.

윤태규(대구 남동초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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