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학기행] 김훈의 '칼의 노래'②

진정한 적은 오히려 내부에 있음을…

▲ 현충사와 현충사 주변 풍경.
▲ 현충사와 현충사 주변 풍경.

현충사 본전을 나오면서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쓸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쓸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일부러 본전 옆 언덕으로 난 길을 따라 천천히 유물관으로 향했다. 기대했던 것보다는 화려하지 않고 정제된 건물. '이충무공전서'가 보였고 '임진장초'가 눈에 들어왔다. 젊은 시절 삶을 기록한 '함경도 일기'와 7년 전쟁의 통제사 목소리인 '난중일기'에도 긴 시간을 머물렀다. 건물 중앙에 서 있던 거북선도 아름다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 마음을 잡아둔 것은 190cm가 넘는 통제사의 장검이었다. 거기에는 희미하게 검명(劍銘)이 새겨져 있었다. '일휘소탕 혈염산하'(一揮掃蕩 血染山河).

'적의 칼은 삼엄했다. 칼자루 쪽에 눈을 대고 칼날의 끝쪽을 들여다보았다. 칼이 끝나는 곳에 한 개의 점이 보였다. 그 점은 쇠의 극한이었다. 칼은 그 소실점 너머로 사라지는 듯했다. 칼날 위에서 쇠는 맹렬한 기세로 소멸하고 있었다. 쇠는 쇠 밖으로 뛰쳐나가려 했고, 그 경계를 따라 칼날은 아슬아슬한 소멸의 흔적으로 떠 있었다…. 나는 그 칼이 뿜어내는 적의의 근원을 헤아릴 수 없었다.'(김훈, '칼의 노래' 부분)

오랜 시간 칼 앞에 서 있었다. 소설 어느 부분인지 머리가 아득했다. 통제사의 목소리가 머리 위에 쏟아졌다. '포로들은 모두 각자의 개별적인 울음을 울고 있었다. 그 개별성 앞에서 나는 참담했다. 내가 그 개별성 앞에 무너진다면 나는 나의 전쟁을 수행할 수 없을 것이다. 그때, 나는 칼을 버리고 저 병신년 이후 곽재우처럼 안개 내린 산속으로 숨어들어가 개울물을 퍼먹는 신선이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울음을 우는 포로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적의 개별성이야말로 나의 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 어째서 (저들이) 나의 칼로 베어 없애야 할 적이 되었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적에게 물어보아도 적은 대답할 수 없을 것이었다.'(김훈, '칼의 노래' 부분) 통제사는 칼을 들어 자신 속에 담겨있는 온정주의와 낭만주의를 제일 먼저 베어버린다. 통제사에게 적을 베는 것은 생존을 위한 노동과 같았다. 생명에 대한 기본적인 가치판단은 이미 그의 손을 떠난 지 오래다. 통제사는 자신의 피할 수 없는 노동을 공(工)과 염(染)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물들일 염자가 깊사옵니다.'/ '그러하냐? 염은 공(工)이다. 옷감을 물을 들이듯이, 바다의 색을 바꾸는 것이다.' / '바다는 너무 넓습니다.' / '적 또한 헤아릴 수 없이 많다.'(김훈, '칼의 노래' 부분)

내가 베지 않으면 내가 베이는 것이 전장이다. 칼이 살아 있었다. 언뜻 내 머리카락을 스치는 칼의 노래를 들으며 갑자기 모골이 송연해졌다. 할 수만 있다면 칼을 잡고 휘둘러보고 싶었다. 아주 가까이에서 칼의 노래를 듣고 싶었다. 헤아릴 수 없는 적들을 향해 칼을 휘두르고 그들에게 칼의 노래를 들려주고 싶었다. 어쩌면 그 헤아릴 수 없는 적은 바로 내 내부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삶에 대한 단순한 안락함이기도 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갑자기 다시 쓸쓸했다. 편안한 일상을 꿈꾸는 내 생각의 하찮음이 쓸쓸했다.

유물관 앞에는 구본전이 있었다. 텅 빈 건물. '顯忠祠'(현충사)라는 현판이 다시 쓸쓸했다. 구본전 앞 바위에 앉아 오랫동안 '顯忠祠'라는 현판을 바라보았다. 다양한 소리를 가진 칼의 노래가 밀려왔다가 밀려갔다. 통제사에게 가장 큰 적은 내부에 있었다. 그것은 통제사 자신의 마음 안에도 있었고 자신이 지휘하는 수군 안에도 있었고 선조 임금으로 대변되는 조정 안에도 있었다. 그의 칼은 자신을 찌르고 나태한 부하를 찌르고 헤아릴 수 없는 적을 찔렀지만 정작 내부의 적에게는 향할 수 없었다. 결국 그의 칼은 쓸쓸한 노래만 부르고 있었던 셈이다. 가장 큰 적은 오히려 내부에 있다. 지친 걸음으로 현충사를 나오면서 뒤돌아 본 건물들에는 통제사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쓸쓸한 칼의 노래만 맴돌고 있었다.

한준희(경명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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