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주 우리 사회는 한 유명 프로야구 선수 출신 사업가가 결혼까지 약속한 여인과 그녀의 세 딸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으로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여기에 안양초교생 우예슬과 이혜진양 사건의 용의자가 검거되면서 그 충격은 더하다.
그동안 한꺼번에 여러 사람을 살해하는 다중살인(mass murder)사건이 종종 발생했다. 1982년 4월에 의령경찰서 우모 순경이 총기를 난사하여 주민 56명을 살해했고, 1987년 8월에 (주)오대양 대표 박모씨와 신도 28명이 용의자 3명으로부터 독극물 등으로 살해당했다. 이 두사건은 모두 범인이 자살했다. 이 밖에도 2005년 6월 연천비무장지대 감시초소 총기난사로 8명, 2006년 7월 서울 잠실고시원 방화로 8명이 각각 사망했다.
나라 밖의 가장 최근의 충격적인 사건은 지난해 4월 재미한국인 조승희씨의 미 버지니아 폴리테크닉 주립대 총격 사건을 들 수 있다. 당시 범인인 조씨를 포함 33명이 사망했고, 29명이 부상당했다.
이러한 불행한 일들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이유와 대책은 무엇인가에 대한 사회적 고민은 점점 깊어져가고 있지만 담론만 무성할 뿐이다. 그런데 다중살인범의 특징에서 대책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첫째, 미국의 연방수사국(FBI)은 수많은 다중살인 사건을 분석한 결과 다중살인범들은 제도·종교·사회계층·인종 문제 등 범행동기에 상관없이 한꺼번에 많은 사람을 죽이고 대부분 본인은 자살하는 특징을 보인다고 밝혔다. 이러한 의견은 우순경 총기난사 사건과 오대양 사건, 조승희 사건, 그리고 이호성 사건의 경우 모두 범인이 자살했다는 점에서 더욱 지지를 받을 수 있다.
둘째, 다중살인을 행한 대부분의 범인이 아내나 동료, 연인과의 불화, 신체장애에 대한 비관, 사회적 부적응 등으로 분노감, 사회적 박탈감, 우울감이 누적되어 대인기피성 성격장애, 정신분열적 편집증적인 징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이 적절한 상담과 정신의학적인 치료를 지속적으로 받지 못할 경우 합리적인 의사결정능력이 현저하게 저하한다는 사실은 많은 연구와 사례를 통해서 밝혀진 바 있다. 이호성씨 경우에도 스포츠선수로서 최정상에 오른 뒤 은퇴 후 그가 겪은 인생의 부침에서 범행동기를 일부 읽을 수 있다.
셋째, 다중살인범들이 보이는 반사회적 성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정신의학협회에서 채택한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요강에 따르면 반사회적 성격장애란 책임감, 도덕성이 부족하고, 타인에 대한 관심이 없으며,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인격장애를 말한다.
그런데 이 반사회성 성격장애는 여러 영향요인이 있긴 하지만 무엇보다 사람의 인격을 형성하는 주요 시기인 아동기의 경험이 결정적이라는 점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가난한 미국이민자 조승희의 아동기 시절과 오로지 그라운드에서 혹독한 훈련으로 승리만을 요구하는 풍토에서 따뜻한 품성과 관용정신을 키우기에는 이호성의 초·중·고 시절이 얼마나 척박하였을지를 짐작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금번의 사건을 비롯해 최근 발생하고 있는 일련의 정신장애적인 징후를 보이는 사람들에 의한 문제들을 보면서 몇 가지 원론적인 대책을 제시할 수 있다.
먼저 정신장애자에 대한 가족과 사회적 관심이 우선되어야 하며, 미국의 경우처럼 지역사회정신건강센터 등을 설치하여 신체적 질병을 치료하는 것처럼 쉽게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아이들이 초등학교부터 대학입시에 매달리는 현재의 입시구조를 개선하여 정상적인 성장단계를 거칠 수 있도록 교육계가 나서야 한다. 나아가 사회적 소외그룹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복잡다단한 사회변화에서 사회의 모든 일탈적 양상을 예측하고 즉각적인 대책을 세울 수는 없다. 따라서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장기적인 안목에서 국가와 지역사회가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사실상 가장 정확한 해결책일 것이다.
허경미 계명대경찰학부교수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