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서 뱃살이 조금씩 늘어 걱정하던 기자는 얼마 전 서점에서 서울대 의대 유태우 교수의 책을 우연히 손에 쥐었다. '누구나 10㎏ 뺄 수 있다.' 출간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려 내용이 궁금하던 참이었다.
책의 요지는 한마디로 '적게 먹어라'였다. 음식의 칼로리를 일일이 따지지 않아도, 시간과 노력을 들여 운동하지 않아도, 원래 먹던 양보다 조금씩 줄여 위장을 작게 만드는 원리다. 유 교수는 '요요 현상이 없는 영구적인 다이어트법'이라고 자신있게 밝히고 있었다. 모든 진리가 그러하듯 그의 다이어트법도 지극히 상식적이었다.
요즘 이명박 정부의 다이어트 계획을 보면 이런 상식이 무시되고 있는 것 같아 딱하다. '조직 슬림화'를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삼은 듯하지만 먹는 양을 줄이는 데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정부 부처를 통합하고 인력을 감축하겠다고 큰소리 쳐 놓고는 잉여인력 재배치에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고 있다. 중앙 공무원 3천400여명에 특별지방행정기관의 1만여명을 추려낸다는데 흡사 남는 뱃살을 움켜쥐고 '이걸 빼긴 빼야 하는데' 엉거주춤 고민하는 모양새다. 그러다 보니 이들을 규제 개혁이나 경제 살리기 등에 투입한다는 되돌이표 방안에 그치고 있다.
그래놓고 지방자치단체에 하는 양은 가관이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15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조직을 슬림화하겠다며 새로울 것도 없는 방안들을 쏟아놨다. 조직을 '대국·대과'로 바꿔 업무 중복을 줄이고, 민간 위탁을 늘리고, 인구감소 지역의 공무원 수는 줄이는 방법이다. 지방 예산을 10%씩 감축해 경제 분야로 돌리도록 하고, 성과에 따라 교부세를 차등 지원하겠다는 낡은 '채찍과 당근'까지 꺼내들었다. 대통령이 기업인 출신이라는데, 실용정부고 선진정부라는데, 지난 정부들과 다를 게 별반 없다.
지방자치단체도 어찌 됐든 장단을 맞출 수밖에 없는 노릇인데, 문제는 움켜쥘 뱃살이 그리 넉넉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대구시의 경우 지난 참여정부 동안 공무원 숫자가 242명 늘어 이달 초 현재 4천793명이다. 그나마 1일 2교대 근무 해소를 위해 불가피하게 충원한 소방공무원이 174명이다. 그 사이 중앙정부가 먹고 찌운 살에 비하면 살이랄 것도 없다. 올 초 조직 진단 결과 각 부서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이 300명을 넘는다니 인위적인 퇴출은 아예 힘든 상황이다.
그래도 대구시는 일단 3%의 인력을 감축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한창 조직 진단과 개편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경제자유구역청 설립, 2011세계육상선수권대회 지원 확대, 도시철도 3호선 착공 등에서 발생할 신규 수요를 정원 확대 없이 감당하려면 다른 데서 미리 살을 빼둬야 하기 때문이다. 중앙정부가 되레 배울 일이다.
이렇게 보면 새 정부가 유념하고 집중해야 할 부분은 공무원의 수는 일정한 비율로 늘기만 한다는 파킨슨의 법칙에 빠지지 않는 것이라 생각된다. 억지로 줄이는 데 힘을 쏟을 게 아니라 공무원 늘릴 일을 삼가 다음 정부에 떠넘길 뱃살을 더 찌우지나 말자는 얘기다.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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