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황홀'은 우리 시대의 외롭고 쓸쓸한 남자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남자들의 이야기라고 해서 행여 이 책이 소설이라고 단정 지을 필요는 전혀 없다. 사진작가라는 저자의 이력과 책의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이 책은 픽션이 아니라 시대의 일상에 거세당한 이들이 하나의 탈출구로 삼는 오디오에 관한 이야기다. 마흔 중반의 나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별표, 혹은 독수리표 전축에 관한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니 그 상표에 관한 기억은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소위 음악다방이나 음악 감상실 정도의 기억은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절대적 빈곤에 시달리던 우리의 젊은 날, 밥 딜런과 존 바에즈, 김민기나 양희은이 들려주던 노래들은 그것이 세상을 향한 절규였던, 끝없는 침잠이었던 새로운 문화를 꿈꾸던 저항의 정신이었다. 하지만 시대는 가고 저항은 또 다른 권력을 낳고 그 권력마저 시들해져버린 지금, 잃어버린 우리의 젊음은 너무나 외롭고 쓸쓸하다. 그 외로움과 쓸쓸함의 끝에 '소리의 황홀'이 있다. 마크레빈슨, 맥킨토시, 패스, 아발론, 탄노이, 소누스 파베르, 린, 골드문트, 윌슨 베네시, 패토스라는 이름에 가슴이 떨린다면 스피커와 앰프의 조합, 즉 자신만의 궁극의 소리를 찾아 몇 날, 몇 밤을 꼬박 새운 경험을 가진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또한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젊은 날 가졌던 열정의 또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저자인 윤광준의 말처럼 좋은 오디오란 비싼 오디오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세계 초 일류기업인 국내 모 기업이 천문학적인 금액을 퍼붓고도 실패를 맛보고 끝내 하이엔드의 꿈을 접어야만 했던 사실이 말해주듯이 오디오란 득음을 이루려는 이들의 집념이며 만드는 이와 듣는 이의 철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야만 하는 진정한 소리를 향한 과정이다. 다시 말하면 소위 오디오를 한다는 것, 오디오 파일(audiophile)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미쳐 있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우리 시대라는 말과 같은 동의어다. 거실에서 쫓겨나와 베란다로 이제 그 베란다에서 복도로 밀려나왔다가 아예 담배를 끊어버린 남자들을 본다. 그들이 가진 또 하나의 장난감, 오디오, 역시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오디오 가게들은 문을 닫고 있고 간편한 MP3 플레이어가 세상의 주류인 양 행세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인터넷의 오디오 동호회에서는 득음을 갈구하는 메시지들이 서로를 끌어당기고 있다. 해서 '소리의 황홀'을 읽다 보면 비운의 첼리스트인 자클린 뒤프레의 첼로가 왜 슬픈지, 비틀즈의 음악이 왜 혁명적이었는지를 조금은 알게 된다. 외롭고 쓸쓸한 이들이여! 깊은 밤, 불을 끄고 마일즈 데이비스를 들어라. 그리고 자욱한 담배연기를 맡으라. 하지만 결코 중독되지 않을 만큼만···.
전태흥(여행작가·㈜미래데이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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