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미니 보이콧

영국의 아일랜드 지배가 노골화된 19세기 후반, 아일랜드 메이오주에서 소작료 경감 시위가 일어났다. 영국 귀족의 영지 관리인이었던 찰스 커닝엄 보이콧은 이를 거부하고 소작료를 체납한 소작인들을 추방하려 했다. 하지만 이 조치는 소작인들의 비폭력 저항을 불러일으켰고 거꾸로 보이콧이 전체 소작인들로부터 배척당해 영지를 떠나야만 했다. 이를 계기로 그의 성을 따 '보이콧(boycott)'이라는 용어가 생겼고 '배척하다' '불매동맹을 하다'와 같은 비폭력 위협행위를 뜻하는 말이 됐다.

反漢(반한) 감정이 폭발한 티베트 시위가 격화되면서 베이징 올림픽에 대한 '미니 보이콧' 주장이 일고 있다. 최근 국경 없는 기자회(RSF)는 "전 세계의 정치인들이 티베트 사태에 대해 침묵해서는 안 된다"며 각국 지도자들에게 올림픽 개막식 행사에 참석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큐슈네르 프랑스 외무장관도 다음주 개막되는 EU 27개국 외무장관 회의에서 올림픽 개막행사 보이콧을 논의할 것을 유럽연합(EU)에 제안했다.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행사를 전면 거부함으로써 실제 문제를 파생시킨 전례도 없지 않다. 1980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서방진영 국가들이 모스크바 올림픽에 불참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소련 등 사회주의 국가들이 4년 후 LA올림픽에 불참해 반쪽짜리가 된 바 있다. 이를 의식한 때문인지 개막식이라도 거부해 티베트 시위에 대한 중국 정부의 폭력적인 진압에 항의 메시지를 보내자는 것이 베이징 올림픽 미니 보이콧이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죽기 살기로 티베트 사태를 평정하겠다"고 선언할 만큼 티베트 평정에 '강한 중국'의 명운을 걸다시피한 중국인들의 집착을 감안하면 미니 보이콧이 그나마 유일한 대안이 아닐까 싶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개회사에서 히틀러는 "스포츠답고 기사도가 살아있는 경기는 가장 훌륭한 인간성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평화의 정신으로 국가를 서로 연결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 히틀러의 입에서 '평화' '인간성'과 같은 말이 나온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다. 중국의 이익을 위해 철모까지 쓰고 티베트 시위를 진압했던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오는 8월 8일 베이징 올림픽 개회사에서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하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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