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심영섭의 올 뎃 시네마]추격자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한 한 남자의 숨가쁜 추격

마이클 만의 '콜래트럴'이나 '히트'에서 느꼈던 사내들의 극한 대결, 나타나기만 하면 치가 떨리는 '터미네이터'의 공포와 스릴감. 석재공이 돌로 조각하듯 장르를 다듬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계산하고 또 계산해서 만든 것 같은 솜씨 좋은 장인의 작품.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는 이제 대한민국도 제대로 된 스릴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장르의 랜드마크이다. 언론의 상찬과 신인감독의 결기와 배우들의 에너지가 만들어 낸 버뮤다 흥행 삼각 지대같은. 일단 영화는 첫 장면부터 거두절미하고 도드라지게 살인자를 스크린에 공개 수배한다. 머쓱하고 착한 표정으로 보도방 아가씨와 차를 탈 때부터 이미 영민이란 캐릭터가 연쇄 살인마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관객들은 알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여자 미진이 끌려간 곳은 쇠창살과 벽이 가로막고, 마당에는 수상한 손목 토막이 불쑥 나와 있는 곳. 게다가 억지로 닦달해 끌어 낸 미진이 실종되자, 그녀를 찾으러 나선 전직 형사 중호는 영화 초반부부터 살인자인 영민과 자동차가 추돌하면서 안면을 트기 시작한다.

그뿐인가. 영화의 마지막 천신만고 끝에 탈출한 미진을 여지없이 영민이 망치로 내리치면서, 나홍진 감독은 관객의 가슴에도 충격의 대못을 박아 버린다. 징그럽게 능숙한 연출 뒤편에는 2시간 동안의 끈질긴 추격신에서 풍겨나오는 쫓고 쫓기는 자, 배우의 땀 냄새에 절여진 장르의 파격이 관객을 핏빛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댄다.

그러나 '추격자'는 또한 어쩔 수 없이 신인 감독이 만든 스릴러 장르 영화인 것이다. 영화광 출신 감독의 인상적인 데뷔작이 그렇듯, 여기에는 여기저기서 짜깁기 한 할리우드 영화의 퍼즐 조각이 곳곳에서 실밥을 툭툭 드러낸다. 일테면 취조 받는 여자 형사에게 은근히 접근하며, '향수 안 뿌렸네요. 생리하시나봐 냄새가 비린게'라는 살인마의 회심의 쐐기 한방. 이 장면은 '양들의 침묵'에서 한니발 박사가 몸을 꽁꽁 묶인 채, 피해자의 어머니를 만나 '아이를 모유로 키웠나, 우유병으로 키웠나' 물어 보며, '모유로 키웠다면 젖꼭지가 단단하겠군'이라고 응수하는 언어적 강간에 버금간다. 중간에 늘어지는 부분이 있는 것 역시 아직은 버릴 것은 버려서 관객의 완급을 완벽히 조율하지 못하는 신인감독의 욕심이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유영철의 연쇄살인에서 힌트를 얻었다는 영화는 과거 '살인의 추억'이 그러했듯 사지절단된 여성의 육체에서 우리 사회의 환부를 들추어 낸다. 추격자 속의 2000년대는 영민처럼 거대한 성불구로 절룩이고,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자-여성들의 육체를 무방비 상태로 길거리로 내몰아, 살인마 앞에 그대로 노출시켜 두는 그런 곳이다.

영화의 마지막, 살인마는 골프채를 휘두르고 추격자는 살인마의 과거 무기였던 망치를 휘두른다. 예수 상을 조각한 이가 여성의 두개골에도 망치를 가져다 댄다. 그 수많은 역설 속에 '추격자'는 흥행에서도 다른 영화의 추격을 따돌리고 있다. 부디 한예종(나홍진 감독은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했다) 출신으로 '한 예술하는 종합 선물 셋트' 에 목숨 걸지 말고. 한국의 제임스 카메론도 좋고, 또 다른 봉준호란 칭호를 들어도 씩 웃을 수 있는, 배짱 두둑한 장인 감독의 앞날을 기대해 본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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