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봄을 사는 사람들

뉴욕에도 봄이 찾아왔습니다. 대구보다 조금씩 늦게 오는가 봅니다. 대구 친구가 메일로 봄을 알려주었습니다. 길거리에 피기 시작하는 산수유의 노란 꽃이라며 사진을 보내옵니다.

점심시간에 커피를 한잔 들고 친구가 보내준 대구의 봄소식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황사가 쳐들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황사 때문인지 친구는 기침을 오래 하고 있다고 합니다.

뉴욕 맨해튼의 5번가에 다이아몬드 상들이 쭉 있는 길이 있습니다. 록펠러 센터가 있는 그 길에 서면 까만 모자에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이들을 많이 봅니다. 뉴욕의 다이아몬드를 다 가지고 있다는 유대인들입니다. 뉴욕의 경제를 쥐고 있다는 말입니다. 봄이 왔는데도 이들은 그 옷을 벗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봄은 남의 일인 듯 여전히 검은 긴 코트 자락을 펄럭이며 꼬부랑 머리를 귀 밑으로 하나 내려뜨리고 있습니다.

J. G. 프레이저의 '황금가지'에 의하면, 고대인들은 겨울이 되면 식물이 죽었다가 봄이 되면 다시 부활한다고 믿었습니다. 봄이 오면 그들은 가장 원시적인 방법으로 추위를 맞고 죽은 듯이 있다가 꽃과 잎으로 그 죽음에서 부활한다고 합니다.

교회에서는 부활 시기라는 말보다는 '파스카 시기'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파스카라는 말은 히브리어에서 나온 말로 '건너가다(Passover)' 입니다. 구약의 파스카는 히브리인들이 이집트를 탈출할 때 시간이 없어서 누룩 없는 빵을 먹고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 이스라엘 백성의 집임을 표시하여 죽음의 재앙을 지나가게 하고 홍해를 건너감으로써 죽음에서 생명으로 넘어감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뉴욕의 공립학교에서는 봄 방학을 일 년씩 바꾸어서 합니다. 한 해는 유대인들의 과월절(Passover)을, 또 한 해는 부활절(Easter)을 중심으로 방학을 합니다. 올해는 과월절을 중심으로 방학을 했습니다. 뉴욕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살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문화가 기승을 부립니다. 더구나 공립학교 교사의 60%가 유대인이라 유대인들의 축제나 명절에는 선생님들이 쉬기 때문에 학교도 쉬어야 하는 수가 많습니다.

신앙과 문화의 접목이 잘 이루어져 있는 미국의 문화는 크리스천의 문화지만 유대인이 많이 살고 있는 뉴욕의 문화는 유대인 문화와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다른 도시 사람들은 '뉴욕'을 '쥬욕'이라고 비아냥해서 부르기도 합니다. 유대인들이 사는 곳이라는 뜻이지요.

봄은 파스카의 신비를 살아가는 시기입니다. 겨울을 지나 새로운 생명을 위해 씨를 뿌릴 시기인 것입니다. 우리는 새 생명을 위해 봄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백영희(시인·뉴욕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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