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종문의 펀펀야구] 비운의 선수가 안되길

역대 삼성 라이온즈 선수 중 비운의 스타는 누구일까?

첫 번째로 필자는 투수 박충식을 꼽는다. 지금은 이민가서 사업가로 잘 살고 있지만 그는 뛰어난 성적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도 시상대에 오르지 못했다. 역사에 남을 1993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181개의 공을 던져 15회 완투 끝에 무승부를 기록하며 '혼의 투구'를 보여준 박충식은 이후 5년 동안 팀내 가장 많은 완투(26회)를 기록하며 홀로 고군분투했다.

방위 복무를 겸했던 96년에도 8승2패12세이브를 기록하며 전전후로 활약했고 98년 부상이 오기 전까지 6년간 908이닝을 던지고 69승을 거두며 기복 없이 팀내 주축 투수의 역할을 다했다. 그러나 93년 이후 10년간의 선수생활 동안 한국시리즈 진출은 더 이상 없었다. 1999년 시즌이 끝나고 FA 이강철을 데려오면서 보상 선수로 KIA로 떠났던 박충식은 2002년 삼성의 우승을 멀리서 바라보며 축하해 주었고 2003년 부상이 재발하자 미련없이 은퇴했다.

93년 한국시리즈 3차전 당시 어쩌면 그는 알고 있었을까? 다시는 만나지 않을 한국시리즈였기에 혼신의 힘을 다해 영원히 남을 추억을 새겼는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 비운의 선수로 외야수 강동우를 뽑는다. 데뷔 첫해 타구 소리만 듣고도 포구 지점을 찾는다는 신의 경지에 가까운 수비를 선보여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또 재치 만점의 1번타자로 3할과 22도루를 기록해 팀내 횃불같은 존재로 떠올랐다. 더구나 98년 12월 방콕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꼽혀 미래는 탄탄대로처럼 보였다.

그러나 호사다마였을까? 운명의 여신은 출발이 너무나 좋았던 천재 루키를 그냥 두지 않았다. LG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이병규의 타구를 잡으려다 펜스에 부딪혀 무릎이 파열되는 부상을 당한 뒤 1년 넘게 공백을 갖게 되었고 이후로 적토마의 용맹은 조금씩 사라져 갔다.

세 번째 비운의 선수는 포수 현재윤. 2002년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입단한 현재윤은 2004년에 와서야 재능을 선보였다. 진갑용의 부상으로 백업 마스크를 쓴 루키 포수였지만 그는 준비된 선수였으며 팀이 흔들릴 때마다 버팀목이 된 작은 거인이었다. 더구나 대학 때부터 사귄 연인과 그해 시즌이 끝나면 결혼을 약속했던 터라 책임감도 있었고 의지와 열정도 강했다.

그러나 그해 시즌 종반에 닥친 병역비리에 연루되어 그는 한순간에 날개가 꺾이고 말았다. 떨어져 지낼 수 없었던 연인의 요구을 떨쳐 버리지 못했던 결과. 그는 차디찬 감방에서 스스로를 단죄했다. 이후 강해지기 위해 달콤한 모든 것을 버리고 3년간 절치부심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복귀를 준비하던 그는 올해 시범경기에서 주자와 충돌해 병석에 눕고 말았다. 현재윤이 선배들의 전철을 밟지 않고 다시 우뚝 서기를 바랄 뿐이다.

최종문 대구방송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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