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의 나라 네덜란드에서는 17세기에 희한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네덜란드 호사가들 사이에서는 튤립 수집이 대유행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황제튤립'은 부르는 게 값이었지요. 투기가 성행했고 자고 나면 튤립값이 올랐습니다. 1624년에는 황제튤립 한뿌리 값이 암스테르담의 집 한채 값과 맞먹었습니다.
그런데 오랜 외국생활 탓에 물정 어두운 한 남자가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황제튤립 뿌리를 양파로 오인하고 먹어버리는 황당한 일이 벌어집니다. 대박의 꿈에 젖어있다 봉변을 당한 주인은 친구를 상대로 소송을 냅니다. 그러나 법원은 "튤립은 꽃 이상도 이하도 아니므로 배상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을 내립니다. 투기에 이성을 잃은 사람들로서는 정신이 번쩍 드는 소식이었지요.
사건 이후 튤립을 팔겠다는 주문이 빗발치고 튤립값은 원래대로 폭락합니다. 그제야 사람들의 눈엔 튤립이 튤립으로 보이기 시작한 거지요. 어떻습니까. 우리나라에서 2000년대 초반 불었던 코스닥 투자 열풍과 유사한 장면 아닌가요?
요즘 요동치는 주식시장 때문에 냉가슴 앓는 개인투자자들이 많습니다. 빚내서 아파트 투자에 나섰다가 이자 갚는다고 허덕이는 이들도 적지 않지요.
자산시장은 늘 거품과 침체 사이를 오르내립니다. 여기에 좋은 비유가 있습니다. 주인과 개가 산책을 나갑니다. 개는 늘 주인보다 앞서 달려갑니다. 그러다가 주인보다 너무 많이 떨어지면 되돌아가지요.
헝가리 출생의 전설적인 주식 투자자 앙드레 코스탈리니는 주식시장의 생리를 주인과 개의 관계로 설명했습니다. 주인은 실물 경제이고 개는 주식시장입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경제와 주식시장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만, 중·단기적으로 볼 때 증시는 실물경제를 그대로 반영하기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과열·침체를 반복한다는 거지요.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자산에 대한 투자는 바보 찾기 게임일 수 있습니다. 자신이 산 가격보다 비싼 값으로 나중에 사주는 바보를 찾는 게임 말입니다.
이번 주 주말판에는 살벌한 자산 시장 투자 덫에 걸린 중산층 이야기를 취재해 담았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상투'를 잡는 이들이 대개 소시민들이라는 점입니다. 열광 국면에 뒤늦게 뛰어들고 공포 국면에 투매하는 실수를 반복하는….
다시 코스탈리니로 돌아가봅니다. 그는 "장기적으로 성공한 단기투자자를 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투기가 아닌 투자를 해야 한다는 거지요. 자산 투자에서 '공짜 점심'은 없습니다. 여러분은 투자를 하고 계신가요, 투기를 하고 계신가요.
김해용 기획취재부장 kimh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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