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끼고 자빠진' 세상에 날리는 '처절한 똥침'. 1998년 딴지일보는 그렇게 시작됐다. 인터넷에 딴지일보가 나타났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뜨악' 그 자체였다. 기발한 발상과 패러디, 발칙한 상상력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로부터 10년 뒤, 딴지일보의 파괴력은 예전같지 않지만, 딴지그룹 총수 김어준(40)이 우리 사회를 보는 통찰력과 통쾌함, 솔직함은 여전하다. 인터뷰는 지난 14일 늦은 저녁 서울 양천구 목동 SBS 방송국 인근 커피숍에서 이뤄졌다. 예상대로 달변이었다. 김어준은 유쾌했다. 잘 웃었고, 잘 웃겼다. 인터뷰는 2시간을 넘겼다. 그의 넓은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했다. 닦아 주고 싶었지만 '변태' 소리 들을까봐 참았다.
◆김어준이 말하는 김어준
-도대체 김어준은 어떤 사람입니까?
"멋진 놈이죠. 흐흐흐. 주로 어떤 행동이 나에게 자연스러운가, 나를 행동하게 만드는가, 내가 믿고 따르는 세계관에 적합한 건가, 내 유전자에 어울리나를 따집니다. 모든 가치 판단의 기준이 '자신'인 거죠. 저는 제 유전자에 내재된 질서를 거스르고 싶지 않아요. 최대한 생겨먹은 대로 행복하게 살다 가야지. 이거예요. 저는 자신을 사랑하고 가진 것에 만족하고, 열등감도 없어요."
-어린 시절은 어땠어요? 부모님의 교육방침이?
"저의 부모님은 대단히 특별하거나 교육철학을 가지신 것은 아니었고 우연찮게 저를 '방임'했어요. 완전히. 맛있는 게 있으면 우리 집에선 어른들이 먼저 먹어요. '니들은 먹을 날이 많잖아.' 이런 논리죠. 예를 들어 PC통신을 하다가 전화요금이 많이 나왔어요. 보통 그럼 혼내잖아요. 그런데 우리집은 혼내지 않아요. '니가 내' 그러시고 끝이죠. 마음대로 하게 두지만 책임은 지도록."
-김어준씨를 두고 시니컬할 것이라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죠. 태생이 그러니까요. 그런데 저는 절대 삶에 시니컬하진 않거든요. 시큰둥하긴 합니다. 잘 흥분도 안 하고. 예를 들어 차를 몰고 가는데 자동차 사고가 나면 몇가지 반응이 있어요. 냉소적인 사람은 '아, 사고가 났구나' 하고 그냥 가요. 그런데 저는 '사고가 났구나. 많이 다치진 말아야 할 텐데' 하고 '그냥' 가요. 이게 시큰둥한 거예요. 사람들의 선입견은 어쩔 수 없죠. 제가 치러야 하는 비용이니까요."
-배낭여행을 많이 다녔다면서요?
"대학 1학년 때부터 4년 동안 방학기간 내내 다녔어요. 다녀 본 나라는 50여개국 되는 것 같고요. 그런데 돈이 없으니까. 일단 여행사에 갑니다. 그리고 배낭여행 숙소에 대한 정보나 동영상이 있느냐 물어보는 거예요. 있을 리가 없죠. 그러면 내가 가서 찍어주겠다. 비행기 표만 다오. 그렇게 처음 간 나라가 오스트리아예요. 여행 다니다 보니 꾀가 생겨서 단체 배낭여행객 현지 가이드도 하고 암달러상도 했어요. 주로 중동 사람들이 하는 데 찾아가서 '동양인들이 너네 무서워하니까 나한테 맡기고 커미션을 다오' 그랬죠. 숙소 경쟁이 치열한 로마에서는 동양인 상대로 숙소 호객꾼도 하고. 아니면 숙소를 찾아가서 하루 자요. 그리고 '내가 여기 침대 정리해줄게 하루 더 재워줘' 그러든가. 또는 식당에 가서 밥 먹고 문 닫을 때쯤 돼서 '나 청소하면 안 될까' 그러기도 하고. 때로는 추잡하게 흐흐흐."
◆시사프로그램과 딴지일보
-4년째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라디오의 매력이 뭡니까?
"라디오는 빨간불(on air)이 딱 들어오잖아요. 그럼 '덮어쓰기'가 안 돼요. 그 순간 엄청난 긴장을 합니다. 그 긴장상태가 좋아요. 저는 TV에 거의 안 나가요. 누가 내 얼굴을 알아보는 것도 부담스럽고, 가능하면 몰라봤으면 좋겠고. 그런 점이 라디오하고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아요."
-손석희씨나 김미화씨처럼 다른 진행자들의 스타일과 비교해보면 어떻습니까?
"손석희씨는 공중부양 스타일이죠. 아주 미세한 전자 저울을 놓고 왔다갔다하며 무중력 상태의 중재자 같은 면이 있어요. 심판관형이죠. 청취자는 손석희씨의 시각을 빌려 게스트를 심판하며 쾌감을 느끼죠. 김미화씨는 '나는 모른다'는 식이에요. 진행자가 청취자보다 밑에 있죠. 그래서 청취자가 무식하다 소리 들을까봐 못 묻는 질문을 대신 물어줘요. 저는 진행자와 청취자, 게스트가 같은 선에 있어요. 저는 청취자로 하여금 몰라도 된다, 모르는 것에 대해 열등감을 느끼거나 위축될 필요가 없다고 위로하는 거죠."
-딴지일보가 10년째를 접어들면서 재미도 없어지고 형식도 구태의연해졌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딴지일보가 변한 게 아니라 세상이 바뀐 거죠. 딴지일보가 처음 탄생했을 때와 지금의 인터넷 환경은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어요. 당시는 딴지일보가 인터넷에 처음 등장한 매체였고 대항물도 없었고요. 그렇게 엄숙한 정치에 대해서 막 까는 것도 없었고. 요즘은 인터넷에 매체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매체의 힘도 이제는 포털 서비스로 옮겨왔어요. 하지만 '개인의 행복'이 중요하다는 딴지일보의 관점은 아직 유효합니다."
◆김어준과 한국 사회
-모 일간지에서 '관계 개선' 상담을 하고 있던데,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가 뭔가요?
"많은 사람들의 사연을 읽고 상담을 하다 보니까 공통점이 있더라고요. 고통을 겪을 때 '왜 하필 내가 뭘 잘못했다고'라는 식이에요. 원래 다들 사는 게 무섭잖아요. 불확실하니까. 그런데 불확실성이 삶의 본질이거든요. 그걸 무서워하는 건 괜찮은데, 무서움 자체를 문제삼는 식이에요. 무서움이 오면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릅니다. 결국 어른스럽지 않다는 거죠. 사람들은 자기가 언제 행복한지를 몰라요. 남들은 어떻게 하느냐밖에 안 보이는 거예요."
-어른이 못 된다는 건 결국 어른을 키워내지 못했다는 얘기네요.
"우리나라 공교육은 어른을 만드는 데 실패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된다고 생각해요. 언제 행복하고 기분이 좋은지 자기 성찰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한다고 보거든요. 행복을 얻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도 가르쳐야 합니다. 사람들은 행복에 지불될 비용을 두려워해요. 결국 남을 따라가는 거죠. 이건 국가적으로도 불행입니다. 사람들이 유행에 지나치게 민감하고 자아가 없는 삶을 살거든요. 우리 사회는 어른 부재의 사회입니다. 아이들의 행복을 부모가 위탁경영하면서 아이 스스로 자기 삶의 불확실성과 맞설 순간을 빼앗고 있어요.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이명박 정부에 대해 어떻게 보세요?
"이명박 대통령을 선택한 건 사람들이 행복해지려고 해서입니다. 사실 그 이전에는 사람들은 민주화나 정당성을 우선 고려해 선택을 했어요. 그런데 올바른 것이라고 선택한 노무현 대통령이 자기 삶을 개선하는 데 크게 도움이 안 된다고 느낀 거예요. 그러다 이제 자신을 위해서 선택을 한 겁니다. 다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에 하자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사람이 날 더 행복하게 만들지 않을까'라며 처음으로 자신을 위해 선택을 한 거지요. 그러면 계급적 관점에서 저 사람이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적임자'인가 따져야 되는데, 거기까진 가지 못했어요. 아직 정치성이 부족한 거죠. 그래서 투표하지 말았어야 할 사람에게 투표한 거고. 강남 부자도 아닌 도시 빈민들이 이명박을 선택한 건 맞지 않았어요. 이명박 정부는 '경제가 회복되면 정말 행복해질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에는 전혀 답하지 못해요. 시대정신이 없는 셈이죠. 시대정신이 없는 사람에게 내 행복을 구현해줄 것이라고 맡긴 거예요."
-한나라당 일색인 대구경북의 보수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요?
"저는 경남 진해에서 태어났고 어머님이 경상도 분이에요. 그래서 경상도 정서를 이해해요. 경상도에는 다른 지역에 정권을 빼앗겼다는 정서가 있어요. '상징조작'된 거죠. 그런데 따져보면 그런 권력을 서민들이 누려본 적이 없어요. 아주 소수의 권력 최상층 사람들이 누렸을 뿐인데. 그것이 마치 서민들의 것인 양 정치인들이 인식시켰어요. 경상도 사람들이 누군가에 대해 분노하고 혐오하고 반목하게 만든 건 그 정치인들의 죄악이죠."
-앞으로 꿈이 있다면
"일단 에베레스트를 가봐야 됩니다. 그리고 남극을 가고, 사하라를 횡단해야 됩니다. 어렸을 때부터 해보고 싶었던 꿈들이에요. 그냥 해보고 싶은 거예요. 나이가 60이 넘어가면 식당을 해보고 싶어요. 일단 메뉴는 내가 정해. 손님은 먹기만 해. 그리고 공감대가 형성되는 사람들끼리 커뮤니티로 만드는 거죠. 아, 에베레스트는 체력이 안 돼서 못 올라가니까 헬기가 개발될 때까지 기다려야 돼."
인터뷰가 끝나고 김어준이 한마디 내뱉었다. "아, 제발 우리나라 우파정권은 좀 세련됐으면 좋겠어. 왜들 그렇게 촌스러운 거야. 솔직히 노무현 정부 시절에 들어왔던 문화계 인사들이 이명박 정부 발목 잡는다는 거, 그거 순 '사기'잖아. 논공행상하려니 자리가 모자라서 그러는 거 뻔히 아는데. 그래도 비슷하게는 갖다 붙여야지. 참 나."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 김어준은?
1968년 경남 진해에서 태어났다. 부산에서 초교를 졸업하고 상경, 서울대를 세번 떨어진 뒤 홍익대 전기공학과에 입학했다. 1995년 대학 졸업 후 포스코에 취업했지만 8개월 만에 그만뒀다. 이후 여행과 인터넷 관련 사업을 하다 IMF 때 실업자 신세가 됐다. 1998년 7월 '웹진 형태의 개인 홈페이지'인 딴지일보를 창간, 스스로 '그룹 총수'로 칭했고 2002년 딴지그룹을 발족했다. 2004년 CBS '김어준의 저공비행'을 맡았고 2006년부터 SBS 라디오 '뉴스 N 조이'를 진행 중이다.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국정원, 中 업체 매일신문 등 국내 언론사 도용 가짜 사이트 포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