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장님] 포항 대동배1리 이장 고명욱씨

양계업서 어업 전환한 '제2인생' 어부들 힘찬 물길질 보면 희망이…

봄바람에 실려오는 갯내음을 즐기며 부둣가 마을을 들어서니 갈매기가 먼저 인사를 건넨다. 올망졸망 모여 있는 고깃배들 사이로 몇몇 어부들이 부지런히 어망을 손질하며 출어 준비에 바쁜 모습이다. 바닷가에서는 10여명의 해녀들이 시나브로 물길질을 하며 조개와 전복을 채취하느라 부산한 움직임을 보인다.

전형적인 어촌마을인 포항 대보면 대동배1리. 포항시내에서 차를 달려 30~40분이면 닿는 곳이다. 마을회관 문을 여니 이 마을 고명욱 이장이 넉넉한 웃음을 지으며 맞이한다. 농어촌 현실이 그렇듯 상당히 노령의 이장인 줄 알았는데, 보기 좋게 예상이 빗나가버렸다.

머리숱이 아직은 검은 예순하나의 젊은(?) 이장이었다. 다른 마을의 대다수 이장들이 70대인데 비해 고 이장은 이제 이순(60)을 넘긴 앳된 이장이다. "다른 마을 이장보다 제가 좀 젊지요. 허허허…."

고 이장은 50대에 이장을 맡아 지금 5년째로 접어들었다. 비교적 나이가 젊은 축에 속해 아마 향후 10년은 더 마을 일을 맡아야 할 것 같았다.

"고 이장 스스로 원한 것이 아니라, 주민들 추대로 이장에 뽑혀 인기가 높아요." 옆 자리에 있던 마을 노인회장이 슬쩍 한마디 거들었다.

대동배1리도 다른 어촌과 마찬가지로 150여명의 주민들이 어업에 종사한다. 전복양식도 겸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소득수준이 높은 편이다. 그래서 이곳 어촌생활은 늘 바쁘다. 농촌은 농한기가 있어 한철은 숨을 돌릴 수 있지만, 이곳은 날씨만 궂지 않으면 언제나 조업을 나가야 하기 때문에 잠시도 쉴 틈이 없다고 한다.

반면에 대부분 부부가 함께 배를 타기 때문에 늘 조심스럽다. 그래서인지 이 마을은 무속신앙을 많이 믿는 곳이기도 하다. "용왕이 정말 존재한다고야 누가 믿겠습니까만,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기원하는 마음 때문에 출어 전에는 항상 용왕님께 무사항해를 빌곤 하지요."

늘 위험과 맞서 살아야 하는 어민들의 생활을 대변하는 말이었다. 고 이장은 정치망어업을 하고 있다. 바다에 그물을 쳐놓고 고기가 걸려들면 잡는 어업이다. 조금 있으면 가자미가 한창 잡힐 때라 어민들은 기대에 부풀어 있다.

고 이장은 10년 전만 해도 양계업을 했다. 1만마리의 닭을 기르다 온 나라가 IMF에 휩쓸리는 바람에 큰 손해를 보고 어업으로 전환한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다. "그 전에만 해도 양계장 운영으로 수입이 꽤 짭짤했는데 갑자기 한방 먹은 셈이었지요. 그 후로 정치망어업을 시작해 지금은 조금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고기만 많이 잡히면 그만큼 소득도 올라 가는 것이 어촌의 특성이라는 것이다.

"1920년대 일제 강점기 때는 어촌육성 시범마을로 선정돼 청어 등을 비롯한 어종으로 만선을 이뤘어요. 하루아침에 부촌으로 변하면서 일본 유학 등 대학출신이 10명이 넘는 마을로 유명했지요. 돈이 흔해서 '개도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우스갯말이 나돌 정도로 이름났던 곳이 우리 대동배마을입니다."

고 이장은 어른들에게 전해 들은 대동배마을의 화려했던 시절을 애써 곱씹어본다. 그러나 지금은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젊은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버려 활력 잃은 마을이 되어버렸다. 마을 어린이라야 유치원생 1명과 초등학생 1명이 전부다. 대보분교조차 학생이 없어 지난해 폐교됐을 정도다.

그래도 주민들은 마을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양식 중인 30만마리의 전복이 올 연말 수확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면 곧 바로 수익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주민들 지갑이 좀 두둑해질 것을 생각하면 벌써 가슴이 뿌듯해진다.

지난해에는 해양수산부로부터 모범공동체 마을로 선정돼 1억원을 지원받았다. 지난 2006년에도 해양수산부 주관 자율관리어업 풍요공동체마을로 선정돼 2억원을 지원받는 등 마을에 좋은 일이 많아 이장으로서 보람을 느꼈다.

고 이장은 "마을 소득이 높아지고 살기가 편해지면 도시로 떠났던 젊은이들이 돌아올 것으로 생각한다"며 "그러기 위해 주민들 모두 힘을 모아 마을이 잘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또 어촌이지만 인근의 호미곶과도 멀지 않아 관광마을로 조성하는 계획도 갖고 있다.

고 이장은 "대동배마을은 드라이브 코스로도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어 호미곶과 연계하면 관광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유료낚시터와 회타운을 조성해 새로운 소득원을 창출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대동배마을은 주민들이 갓 잡아온 싱싱한 자연산 회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대접에 담긴 술 한잔을 시원하게 들이켠 고 이장은 "우리 마을을 한번이라도 스쳐지나간 사람이라면 바닷가의 아름다운 풍광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다"며 "맑은 바다 공기를 쐬며 도시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싶은 사람들은 언제든지 우리 마을을 찾아주기 바란다"고 마을 홍보까지 곁들였다.

포항·이상원기자 seagul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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