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당론으로 한반도 대운하를 국회의원 총선거 공약에서 빼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정책위의장이 내놓은 이유는 "구체적인 내용도 없는데 자꾸 찬성, 반대를 놓고 시끄럽기만 해서"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구체적인 안을 만들어서 추진할 것"이라고 덧붙여 '추진' 방침에는 변함이 없음을 밝혔다.
당혹스러운 소식이다. 대운하가 무엇인가? 자타가 공인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다. 대통령직인수위의 대운하 TF팀장은 100% 준비가 되어 있고 내년 2월에 착공해서 임기 내에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대운하 전도사'를 자처하는 여당의 실세 의원은 "미친놈 소리를 들어도 하겠다"고까지 공언했다. 이 대통령 스스로도, 비록 "취임 뒤 1년간 모든 절차를 밟아"라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추진하겠다"라고 못박았다. 이렇게 대운하는 이명박 정부의 확고한 방침이다. 그런데도 여당인 한나라당이 총선에서 대운하를 아예 이야기하지 않겠다니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고충'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여론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불교 개신교 천주교 원불교 등 4대 종단과 환경단체의 대표들이 지난달 12일부터 대운하 예정지인 한강-낙동강-영산강-금강 순례에 들어갔다. 서울대 교수 381명과 안동대 교수 26명이 반대 성명을 냈고, 25일에는 교수 약 1천500명이 '한반도 대운하를 반대하는 전국 교수 모임'을 발족시킬 예정이다. 경기 강원 충북 대구 등지에서 시민단체들이 백지화운동을 추진할 기구를 출범시켰다. 전국운수노동조합은 운하 사업이 물류대란을 불러올 것이라며 '총파업 불사'를 경고하고 나섰다. 여론조사에서도 줄곧 반대가 찬성을 웃돌더니, 마침내 지난 19일에는 응답자의 57.4%가 '반대', 39%가 '찬성'이라는 결과도 발표되었다. 게다가 이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3%가 '적극 반대'인 데 대해, '적극 찬성'은 17%에 불과했고, 절대 다수인 90.1%가 '상수원 오염 사고의 가능성이 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이 이렇고 보면,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 없다'는 판단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운하사업은 그렇게 정략적으로 접근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한반도 남쪽 전역에 3천100km나 되는 거대한 인공 물길을 내는 일이다. 지금 그 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앞으로 살게 될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환경과 문화가 걸린 일이다. 천문학적인 재원이 들어갈 것인 반면에, 그 경제성에 대해서는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일이다. 일단 시작하면 원상회복이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이렇게 중요한 국민적 과제에 대해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에서 이야기하지 말자고 할 수 있는 것인가? 게다가 이번에 선출될 사람들이야말로 다름 아닌 대운하특별법을 논의하게 될 바로 그 국회의원들이 아닌가?
또한 대운하사업은 낙동강을 품고 있는 대구경북지역에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일이기도 하다. 지난 1991년부터 네차례나 낙동강이 페놀과 포르말린에 오염되는 사고가 터졌다. 불과 20여일 전에도 취수가 중단되는 사태를 겪었다. 운하가 만들어지면 유속이 6배나 느려져 오염물질이 바다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강바닥에 가라앉게 된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또 도동서원 등 총 64곳의 대구경북지역 문화유산이 이전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 막대한 인력과 기간과 비용이 소모될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그런데도 낙동강에 운하를 만들어야 하는가? 먹는 물 위에 배를 띄워도 과연 괜찮은 것인가? 대구경북지역에서 국회의원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은 답해야 할 것이 아닌가?
총선에서 대운하를 이야기하라. 낙동강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누가 무슨 이유에서 대운하를 만들려고 하고, 누가 무슨 이유에서 반대하는지를, 4월 9일 투표소에 가기 전에 확인해야겠다. 총선은 바로 그런 이야기를 하라고 깔아 놓은 멍석이다.
김창록(경북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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