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도 혹시 '디지털 치매'?

전화번호·ID·비밀번호 자주 깜빡깜빡…

"왜 자꾸 기억이 깜빡깜빡 할까? 이러다가 치매 오는 거 아닐까?"

'얼리어답터(Early adopter)'를 자처하는 회사원 이재훈(32)씨. PDA(개인 휴대 단말기)와 휴대전화, 노트북, 내비게이션 등 최신 첨단 디지털기기에 익숙한 그는 요즘 들어 사소하고 기본적인 내용들을 자주 잊어버린다. 이 씨는 "늘 단축키를 사용하다 보니 가끔은 여동생 전화번호도 기억나지 않는다. 간단한 암산도 휴대폰 계산기로 재차 확인하는 내 모습이 때론 나 자신도 황당하다"고 했다.

디지털 만능 시대. 하지만 정보를 대신 기억해 주는 디지털 기기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매일 사용하는 전화번호나 비밀번호 같은 사소한 것까지도 까맣게 잊어버리는 이른바 '디지털 치매' 환자가 늘고 있다.

'디지털 치매'란 일반 치매와 달리 뇌세포가 파괴되어 나타나는 병리적 현상이 아니라 컴퓨터, PDA, 휴대폰 등 디지털 기기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기억력과 계산 능력이 크게 떨어진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장영미(30·여)씨는 요즘 몇 번이나 같은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비밀번호와 ID를 기억하지 못해 불편을 겪었다. 평소 비밀번호를 잊어버릴 것을 우려해 하나의 번호로 통합해 쓰고 있었지만 최근 대형 포털사이트들이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로 1~3개월마다 한 번씩 비밀번호를 바꾸도록 하면서 기억에 한계를 느낀다는 것. 장씨는 "바뀐 패스워드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이메일이나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보관하고 있다"며 "초등생 조카가 하는 스도쿠 게임(퍼즐 게임의 일종)이 기억력 향상에 좋다고 해서 요즘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연말 한 온라인 취업사이트의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10명 중 6명(63.5%)이 '디지털 치매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증상으로는(복수응답) '외우는 전화번호가 거의 없을 때'(65.7%), '휴대전화 등 디지털 기기가 없으면 불안할 때'(57.8%), '단순한 암산도 계산기로 할 때'(46.8%), '손글씨보다 키보드가 더 편할 때'(45.9%), '가사를 끝까지 아는 노래가 별로 없을 때'(35.2%) 등의 순간에 디지털 치매라는 생각이 든다고 답했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뇌는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하기 때문에 기억하는 습관을 기르지 않으면 기억 용량이 줄어 디지털치매 증상을 겪을 수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대구가톨릭대 정신과 박종한 교수는 "에어로빅을 통해 신체를 강화하듯이 뉴로빅스(Neurobics·뇌를 강화하는 운동)를 통해 자극을 주는 것이 기억력 감퇴 예방에 좋은 방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일부 알려진 바와 달리 스도쿠나 단순 계산을 반복하는 행위는 별다른 효과가 없다는 것. 박 교수는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과거보다 더 복잡한 사고와 감정, 문제해결에 골몰할 수 밖에 없다"며 "단순 기억은 디지털 기기에 의존하더라도 책을 많이 읽어 논리적 사고나 추론 능력을 키우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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