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선생님과 함께하는 논술] '앎과 실천'이 일치하는 삶이란

탄탄한 문장 구성 위에 논지는 정확하게

◆출제 의도

이번 논제는 경북도교육청 사이버 논술 교실(http://www.kben.org/)에서 출제한 2007학년도 1학기 논술 제3회 고등학교 3학년용 문제입니다.

앎과 실천이 일치하는 것은 삶의 미덕이다. 그런데 '앎과 실천'이 단지 일치하기만 한다고 그것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실천'이란 '앎'에 대한 정직한 반응으로서의 실천이다. 따라서 실천의 바탕이 되는 앎이 거짓이라면 그 실천도 거짓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실천이 수반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잘못된 앎에 기초해 있다면 그의 실천은 아무런 결실도 거둘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을 염두에 두고, 잘못된 앎을 실천한 사례와 진실된 앎을 실천한 사례를 각각 깊이 있게 다루어가는 과정이 논술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

'문제 게시판'의 308번 자료와 '논술 첨삭(고)' 게시판의 708번 자료를 참고하세요.

◆ 학생 글

▷논제 1

사회와 개인은 상호 작용을 하는 관계이다. 개인은 사회를 유지시키고 사회는 개인을 보호해준다. 하지만 (가)의 사회는 그렇지 않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약육강식의 사회는 더 이상 개인을 보호해주지 않는다. 많은 친구들을 잃고 운 좋게 혼자 살아남은 (가) 화자는 자기 자신이 밉고 부끄러울 뿐이다. 또 한편으로는 자신과 그 친구들을 지켜주지 않은 사회가 원망스럽기도 할 것이다.

▷논제 2

정부와 그 정치적 조직이 바르다면 복종해야 하지만 바르지 않다면 불복종해야 한다. 하지만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詩習之 不亦說乎)'. 배울 때에 맞추어 익히니 그것이 기쁜 일이 아닌가.

▷논제 3

①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자신의 정부에 복종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정부가 노예제를 묵인하고 멕시코와 제국주의 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지금의 사회와 정부가 어떠한지 알고 있었기에 시민 불복종이라는 글로 자신을 표현하고 그 뜻을 실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앎과 실천은 어떠한 문제일까. 이제부터 앎과 실천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아보자.

② 두 사람에게 쓰레기가 있다고 가정하자. 초등학교에서 바른생활 수업을 통해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한 사람은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기에 실천으로 옮겨 쓰레기통에 버렸다. 이는 앞에서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처럼 앎과 실천이 함께 이루어진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분명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실천에 옮기지 않고 길가에 버린 것이다.

③ 이처럼 앎과 실천을 함께 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함께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또 한 사례로 우리나라의 일제 시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때 우리 국민은 차별과 고통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사회가 어떻게 되어 가는지 알 수 없던 무지한 농민들은 아무런 실천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많은 것을 알고 있었던 지식인층은 어떠했는가. 지식인으로서 이 사회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잘못된 것을 고치려고 하지 않았다. 물론 몇몇의 지식인들은 글과 사회 운동으로써 자신의 뜻을 실천했지만 많은 지식인들은 자신을 감추고 숨기기에 바빴다.

④ 잘못된 것을 알았다면 그것을 바로잡으려고 해야 한다. 앎과 실천은 함께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천하지 않는 것은 도덕적으로나 양심적으로나 옳지 않은 일일 것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 그 둘을 함께 하지 못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외의 상황에서는 앎과 실천이 함께 되어야 할 것이다.

⑤ 윤동주 시인의 글은 모두 자신이 부끄럽다는 자괴감을 나타낸다. 일제강점기 때 지식인임에도 자신을 숨기며 살았던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앎과 실천을 함께 실천하지 못한 사실과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글로써 반성하고 또 반성한 것이다. 윤동주 시인처럼 후회하기 전에 앎과 실천을 함께 하도록 하자.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이 되도록 말이다.

최정은(금천고 3학년)

◆ 논제 및 제시문 분석

▷논제 1

제시문 (가)의 시적 화자는 부조리한 사회에서 살아남은 것을 부끄러워하고 있다. 왜냐하면, 부조리한 '사회' 현실에서 화자, 즉 '개인'이 아는 바를 실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화자의 심정은 죄책감과 부끄러움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논제 2

제시문 (나)에서는 '부당한 정부(사회) 밑에서 개인은 불복종의 처벌을 받고 모든 것을 잃는 것이 낫다. 설혹 그렇게까지 할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그 악을 지원하는 일이 없도록 할 의무는 있다'라는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제시문 (다)의 밑줄 친 부분(학이시습지 불역열호)의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라는 의미는 알 것이다. 여기에서 배우고 익힌다는 것은, 실천의 전 단계로서의 '앎'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무지의 단계에서는 실천을 할 수 없으므로 먼저 '배워서 (참된 것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논제 3

앎과 실천이 일치하는 삶을 사는 것에 대해서 논하되, '앎'의 과정에서 '잘못된 앎'이 아니라 '참된 앎'을 획득하는 것의 중요성이 함께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무지→(참된) 앎→실천'의 단계를 핵심 사항으로 하여 자신의 견해를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1천200자 내외로 서술하면 되겠다.

▷제시문(가):부조리한 '사회' 현실에서 시적 화자, 즉 '개인'이 아는 바를 실천하지 못했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을 부끄러워하고 있다.

▷제시문(나):부당한 사회나 정부에서는 개인이 사회와 관계를 끊고 처벌을 받는 것이 나으며, 최소한 사회의 악을 지원하는 일이 없도록 할 의무는 있다는 내용의 글이다. 지식인은 아는 바를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제시문(다):실천을 위한 전 단계로 배우고 익힌다는 뜻이다.

◆ 첨삭 지도

▷논제 1

'사회와 개인이 상호작용하는 관계'라는 표현은 지나치게 포괄적이다. 그 상호작용 중에서 사회가 부조리할 때 개인이 어떠한 자세를 취하느냐에 초점을 맞추어 보도록 하자. '(가) 화자는 자기 자신이 밉고 부끄러울 뿐이다'는 정확한 분석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도 서술할 필요가 있겠다.

▷논제 2

(나)의 관점은 잘 파악했다. (다)의 해석이 좀 미흡한데, 실천하기 위해서 알 필요가 있다는 의미가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논제 3

서론, 본론, 결론의 분량이나 전체적인 구성력은 양호하나, 논제 파악이 좀 미흡하여 앎과 실천의 일치, 그 이전의 앎의 중요성 등을 다루어 내는 데 다소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① 서론:앎과 실천에 대한 문제 제기.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예를 제시하여 독자의 관심을 끌고 문제 제기를 한 것은 서론의 역할에 충실한 글쓰기를 한 것이다. 다만, 그 두 가지의 연결을 좀 더 긴밀하게 하면 좋겠다.

②, ③ 본론:앎을 실천한 사례와 그렇지 못한 사례. '일제강점기의 무지한 농민, 지식인' 등의 사례들이 다소 식상하기는 하지만, 구체적인 예를 든 것은 설득력을 높이는 데 좋다. 한편, 농민이 무지해서 실천할 수 없다는 것에서 '앎'의 중요성과 필요성이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또 지식인이 사회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으면서도 행동하지 않은 것은, '지행합일'의 필요성으로 연결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출제자의 의도까지 고려해 보면, 그 '앎'이 잘못된 앎인지, 진실된 앎인지에 따라 실천의 결과가 달라지는 사례까지 들 수 있을 것이다.

④, ⑤ 결론:앎과 실천이 하나 되는 삶을 살자. 아는 바를 실천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로 도덕이나 양심에 호소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또 상황에 따라 실천이 뒤따르지 않아도 된다고 한 부분은, 앎을 실천함에 있어 위험이나 고난, 역경, 희생 등을 치러야 하는 것을 무시해 버려서 논지 자체를 흐리게 하는 경향이 있다. 끝으로, 윤동주 시인을 언급하여 자신의 주장을 예증한 것이 결론으로서 비교적 참신했다.

권정안(영천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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