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옥관의 시와 함께] 本色(본색)/정진규

그는 굴비낚시라는 말을 쓸 줄 안다 그는 죽은 물고기를 살려낸다 그것도 이미 소금으로 발효시킨 짜디짠 조기 한 마리가 퍼들퍼들 낚싯줄에 매달린다 팽팽하다 그는 질문을 잘하려는 궁리에 골몰한다 생각의 비늘들을 번득인다 예정된 답변 말고 누구도 모르던 本色(본색)을 탄로시킬 줄 안다 이 봄날엔 나무들이 꽃으로 초록 嫩葉(눈엽)들로 本色(본색)을 탄로시키고 있다 하느님의 질문엔 어쩔 수 없이 정답만 나온다

봄 산을 가면 안다, 겨우내 숨어있던 나무들의 本色(본색)을. 갈색 한 가지로 칠해놓은 겨울 산의 나무들, 한 자락 봄비에 실눈을 뜨는 광경. 연두 초록 온갖 눈엽(嫩葉:새로 나온 곱고 연한 잎)이 제 타고난 색을 찾아가는 모습, 경이롭지 않은가. 검은 제복에 갇혔던 학생들의 개성이 소풍날 드러나듯이 봄 산의 나무들은 봄이 되면 일만 가지 초록으로 제 색을 드러낸다.

본색을 드러내는 게 어찌 나무뿐이랴. 상식과 고정관념에 갇힌 세계의 비밀도 질문 잘하는 '굴비낚시'꾼 때문에 본색을 드러낸다. 그런데 '굴비낚시'? 그런 말도 있던가? 죽은 지식, 죽은 감각, 죽은 물고기를 퍼들퍼들 날것으로 낚아내는 사람. 자명한 사실에도 물음표를 다는 사람이 '굴비낚시'꾼이다. "누구도 모르던 본색을 탄로시킬 줄" 아는 그 사람이다. 진짜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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