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소득 4만달러의 '덫'

한국은행 공식 통계로 국민소득이 마침내 2만달러를 넘었다. '1,000불 소득'을 외치며 발버둥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30여년 만에 2만달러의 위업을 달성했으니 이런 국가적 慶事(경사)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이 '기적 같은 일'을 달성해 놓고도 정작 당사국인 한국은 심드렁하다.

집집마다 자동차가 있고 웬만하면 자녀를 해외유학까지 보내겠다는 '꿈'을 가질 정도의 높은 소득 수준인데 왜 심드렁한가.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소득 수준만큼 幸福(행복)하다고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행복은 성취감과는 또 다르다. 대체로 인간적 관계 설정(relation ship)에서 많이 느낀다는 것이 정설이다.

요즘 젊은 부모들이 들으면 깜짝 놀랄 얘기지만, 어릴 적 동네 아이들과 싸우다 얻어맞고 집에 들어오는 날은 별 탈이 없는데 흠씬 두들겨 패주고 오는 날은 집에 와서 부모님께 야단맞았다. 얻어맞고 들어오는 자식을 보고 속상하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도 차라리 맞는 쪽을 선택(?)하고 때리는 쪽을 경계하라는 부모님 말씀을 이해하는 데는 한참이 걸렸다. 남의 자식도 내 자식 못지않게 귀하다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그래야만 내 자식도 대접받을 것 아닌가. 그리고 때린 자식의 부모는 며칠 동안 얻어맞은 자식의 부모 앞에서 얼굴을 들지 못했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 그 사회적 토양 속에서 우리는 자본주의를 나름대로 꽃피울 수 있었다.

2만달러 시대, 지금은 어떤가. 학교에서는 공부든 운동이든 '이기는 방법'을 가르치지 '더불어 즐기는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자동차 운전을 제대로 하려면 도로 에티켓부터 배워야 하는데 우리는 운전 기술부터 가르친다. 압축 성장을 해오면서 '오로지 이겨야만 살아남는다'는 절박한 생각이 행동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이든 관계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앞서야한다. "내 것 내 맘대로" 식으로는 동네 친목단체도 하루아침에 깨진다. 이제 겨우 2만달러에 올라선 한국의 실물경제, 앞으로 4만달러의 고지로 가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간의 모습을 띤' 자본주의로 옷을 갈아입어야 할 것이다.

윤주태 논설위원

yzoot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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