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는 이혼한 부모와 따로 산다. 남자 친구와 이별한 직후 아버지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는다. 아버지는 겨우 49세의 젊은 나이였다. 아버지와 이혼한 어머니는 미국에 있다.
엄마에게는 아버지의 죽음을 알리지 않았다. 엄마는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혹시 숨겨놓은 돈 없니?"라고 물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두 사람은 명백한 남이다. 아버지가 어찌됐건 엄마에게는 그녀만의 삶이 따로 있는 것이다. 유리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내지만 아버지의 죽음을 알리지 않는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를 사람은 유리 자신뿐이다. 유리는 장례대행업소를 찾는다.
역 구내 컴퓨터에서 동전 오백 원을 넣고 인터넷에 접속해 검색창에 '장례대행업소'라는 글귀를 친다. 수십 개 장례업소가 쏟아진다.
'엄마가 전화를 받는 속도보다 백 배쯤 빠르다'
적당한 대행업체를 찾았다. 그 업체가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상호가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파트라슈 대행업체'. 어린 시절 '플랜더스의 개'를 보며 참 많이 울었는데, 그 때 참 눈물도 흔했다. 그 영화의 기억, 낯익은 개 이름 '파트라슈'에서 아버지의 마지막을 처리해줄 사람들을 택한 것이다.
유리는 아버지를 위해 울 준비가 돼 있지 않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으로 찾아와 울어줄 사람도 없다. 그래서 아버지를 위해 울어줄 가짜 문상객도 구한다. 유리는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D시를 방문한다. 마침 그곳은 '나비축제'가 한창이다. 천변은 꽃물결로 멀미가 날 지경이다. 사흘 동안 나날이 축제란다. 살해됐을지도 모를 아버지 주검에 대한 부검이 진행되는 동안 유리는 새로 만난 남자친구와 축제를 즐긴다.
유리는 스무 살, 온통 화사한 봄날이어야 할 나이가 아닌가. 이 화사한 봄날엔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고, 축제에 참가해야 한다. 상복을 입고 우는 얼굴로 빈소를 지킨다는 게 말이나 될 소리인가? 가는 곳마다 꽃물결이 넘치고 풍물패는 쾅쾅 악기를 두드리며 거리를 활보한다. 세상이 온통 환희와 열정과 젊음으로 '뷰티풀'을 외치며 깨어나고 있다. 아버지는 그 속에 말없이 죽어 있다.
장정옥의 '스무 살의 축제'는 자유롭다. 인생의 축제가 틀림없을 스무 살 나이. 유리는 나비가 꽃밭 위를 날 듯, 물고기가 푸른 바다를 미끄러지듯 나아간다. 꽃밭을 노니는 나비와 대양을 헤엄치는 물고기에게 가족과 연애는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스무 살의 축제'는 2008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작이다. 작가 장정옥은 199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해무'가 당선돼 문단에 나왔다. 안정되고 세련된 문장, 빈틈없는 구성은 작가의 오래된 장점이다. 328쪽, 1만원.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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