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평양의 이스터 섬은 18세기 무렵 네덜란드의 항해자들에 의해 처음 발견된다. 이 손바닥만한 척박하고 황량한 섬은 그 후 '모아이'라 불리는 평균 6m 높이의 거대한 석상들 때문에 세계적인 유명세를 누렸다. 원주민들은 그 석상들이 '섬 반대편으로부터 스스로 걸어왔다'고 대답했다. 적어도 그들이 고의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지는 않다고 결론 내린다. 이스터 섬에는 그 몇십 톤짜리 석상을 수백 개씩이나 만들 만큼의 인력도, 장비도, 자원도, 기술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 이것은 곧 외계인을 연루시키지 않고는 설명되어 질 수 없는 미스터리가 되고 만다.
인류는 20세기 중후반에 와서야 이 이스터 섬의 미스터리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최근의 고고학적 인류학적 연구들은 불과 몇백 년 전 이 섬의 모습이 풍요로운 삼림으로 뒤덮여 있었음을 밝혀낸다. 그 삼림에서 비롯된 열량은 섬의 거주자들의 흥성과 고도의 석기문명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인간은 언제나 더 많은 것을 원하는 법. 잉여가 발생하고 권력이 태동하자 족장들은 앞 다투어 숙련된 석공들을 채석장으로 보내 그들의 권세와 치적을 기념할 거대한 석상들을 제작했다. 일꾼들은 막대한 양의 통나무 받침을 이용, 그것을 해안으로 굴려갔고, 옮겨진 석상은 나무껍질로 만들어진 밧줄을 통해 위태롭게 세워졌다. 부족들이 경쟁적으로 이러한 '모아이'들을 더 크고 화려하게 세우는 것에 집착하자, 섬의 풍요로운 생태계는 서서히 그러나, 철저하게 파괴되어 갔다. 무차별 벌목은 생산을 악화시켰고, 그로 인한 식량의 감소는 번식을 둔화시켰다. 수백 년 뒤, 결국 이스터 섬에 남겨진 것은 600여개의 석상들과 그것이 왜 거기에 있는지도 모르는 굶주린 주민들뿐이었다.
이스터 섬의 미스터리와 그 어처구니없는 해답은 클라이브 폰팅의 역작 '녹색세계사'에서 다루어지는 아주 작은 한 가지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그는 더 나아가 수렵채집 시대에서 신석기 혁명기, 고대 문명기를 거쳐 중세, 현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반복되어 온 인류의 환경에 대한 오만과 무지, 또 그에 따른 치명적 결과를 차분한 어조로 설명한다. 그래서 이 묘한 '세계사'는 로마인들이 이룩한 놀라운 건축사적 성과나 수 양제의 대운하가 중국경제에 끼친 막대한 이익 등에는 별 관심이 없다. 폰팅의 세계사는 그 대신 이스터 섬의 몰락과 같은 유사한 사례들을 통해 궁극적으로 인류 전체의 공멸을 경고하면서, 과연 우리가 이 세계를 어떤 가치의 우위로 바라봐야 할 것인가 하는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은 지금 당장 우리 코앞에 던져져 있다. 잘사느냐, 못 사느냐 인가? 아니면 죽느냐, 사느냐인가? 우리는 기어코 폰팅의 '녹색세계사'의 끝머리에 우리의 '모아이'를 기어코 수록하고 말 것인가?
클라이브 폰팅 지음/이진아 옮김/그물코 펴냄
박지형(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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