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순환구조에서 자금의 흐름은 인간신체의 혈액에 비교되곤 한다. 혈액이 원활하게 순환되어야 모든 기관과 면역체계가 제 기능을 하듯, 자금의 흐름이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국가나 지역 경제구조도 건실하게 유지될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중요한 자금이 지역에서는 끊임없이 외지로 유출되고 있다. 재화와 사람이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는 것도 모자라 자금마저 지속적으로 외부로 흘러나가 수도권과 지방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지역자금 유출의 주범이 바로 외지 대형소매점과 외환위기 이후 속속 지역에 진출, 각종 건설사업을 잠식하고 있는 외지 건설업체들이다.
외지 유통업체의 경우 백화점, 대형마트 할 것 없이 전방위로 지역 유통시장을 공략하고 있어 판매면적의 공급과잉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대구지역 19개 대형마트와 7개의 백화점 중 20개가 수도권에 본사를 둔 외지기업들로 그 비중은 무려 74%에 달한다. 일반적으로 대형마트 1개가 들어설 경우 재래시장 7개, 중소유통업체 350개의 매출액을 잠식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지역 유통업체들의 피해가 얼마나 큰 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실제 외지 대형소매점은 지난해 지역내 전체 매출액 3조원 중 75%인 2조2천500억원을 가져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건설업계의 경우도 상황의 심각성은 별반 차이가 없다. 2006년 한해 동안 대구에서 발주된 공사금액 5조원 중 76%에 해당하는 3조8천억원을 외지 건설업체가 가져갔다.
대구의 지역내총생산(GRDP) 규모가 27조3천억원 정도이고, 5인이상 제조업 출하액이 21조원 정도인 것을 감안해 보면 외지 대형소매점과 건설업체가 가져가는 연간 6조500억원이 얼마나 엄청난 규모인지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 앞으로 입점이 확정된 2개의 백화점과 명품 아울렛매장이 추가로 연간 6천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되고 이미 허가된 초고층 주상복합건물내 2개의 대형소매점과 대구스타디움 주차장 지하에 또 다른 대형소매점이 들어설 경우 자금유출 규모는 더 늘어날 것이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본사에서 경영전략을 수립하고 자금을 집중관리하는 현재의 기업시스템에서는 본사가 지역으로 이전해 오지 않는 한 자금유출을 근본적으로 막을 방법은 없다. 그러나 지역자금 유출을 지속적으로 방치하여 지역경제를 더욱 어렵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최소한 다음과 같은 대응책 마련은 반드시 필요하다.
먼저 유통업의 경우, 너무 과도한 대형소매점의 진입을 억제할 필요가 있다.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는 지역 대형소매점에 신규 소매점이 추가로 진입할 경우, 그 피해는 경쟁 유통업체 뿐만 아니라 지역 재래시장과 영세상인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수 밖에 없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준주거지역내 입점제한, 지구단위계획 수립에 의한 대형유통점 입점제한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도록 도시계획조례를 개정하고 '대형유통점 사전 심의제', '인근 재래시장 등에 대한 환경영향평가제'등을 도입하는 방안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 또 무조건 입점을 금지하기 보다는 매장 규모를 제한하는 방안이 더욱 현실적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는 대형소매점에 대한 교통영향평가 결과 교통혼잡이 우려되는 경우에 추가적인 교통시설을 건설·기부체납하면 입점을 허가하였지만, 이를 지양하고 주변 중소상인에게 미치는 영향이나 교통 체증유발 정도에 따라 매장규모를 제한하는 방안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
건설업의 자금유출을 막기 위해서는 대형 건설공사의 지역업체 수주를 확대하는 방안이 가장 효율적인 방안이다. 이를 위해 반드시 설계전에 분할 발주가 가능하도록 사전협의제를 정착시켜야 할 뿐만 아니라 지역업체 공동 도급의 기준이 되는 금액(222억원)을 대폭 상향하고 이 금액을 초과하는 공사에 적용하는 지역가점 제도를 보다 실효성 있게 운영하여야 할 것이다. 또 민자공모 사업에도 지역업체의 참여폭을 높이는 방안을 강구하여야 한다.
그리고 지역자금 유출 방지를 위한 가장 근본적인 대책은 유출되는 자금보다 더 많이 외부에서 역내로 가져오는 방안이다. 즉 국내외 대기업의 본사를 유치하거나 지역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을 많이 키워 해외나 타지역 진출을 통해 자금을 유입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방안들이 실제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제도적 장치마련과 지방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간의 혈액이 지속적으로 유출되면 위험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지역 경제의 혈액이라 할 수 있는 자금의 역외유출을 방관해 지역 경제를 고사(枯死)시키는 우를 범하지 말자.
이인중 대구상공회의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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