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보길도의 '삼색 봄바다'

"지국총, 지국총" 우는 윤선도 섬 노래

나른한 3월, 가슴 속까지 확 트이는 봄바다가 그립다. 짐을 꾸려 향한 곳은 전남 완도군 보길도. 해남 땅끝 마을에서도 배로 1시간을 더 가야 하는 외딴 섬이다. 선착장에 도착해 배를 기다리는 순간, 바다와 운무에 둘려 싸여 있는 섬의 신비로운 모습에 마음을 빼앗긴다.

섬에서 불어오는 싱그러운 바람에 왜 이렇게 가슴이 뛰는지, 알싸한 바다 내음을 전하며 온몸을 포근하게 감싼다. 섬으로 향하는 배에 오르면 바다빛 하늘과 하늘빛 바다가 눈을 사로잡는다. 한반도 봄햇살을 가장 먼저 끌어안는 남도의 봄바다는 동해, 서해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신비의 하늘색을 머금었다.

보옥리 공룡알 해변

주변 풍광에 빠져 순식간에 다다른 보길도 청별항 선착장. 어디부터 둘러봐야 할지 고민이다. 보길도는 갯돌과 나무, 모래가 빚어내는 삼색의 바닷가가 아름다운 곳. 어느 한 군데라도 빠뜨리기엔 이곳까지 온 시간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철썩, 철썩', '떼구르르, 떼구르르', '자그르르, 자그르르'… 파도와 갯돌의 노랫소리에 빠져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보옥리 공룡알 해변. 갯돌이 공룡알 만큼 크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나 공룡알은 좀 과한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갯돌과 파도가 엮는 환상의 하모니 때문이다. 철썩 파도소리에 밀려 구르는 '떼구르르' 갯돌 소리와 파도가 밀려 왔다 자갈 사이로 빠져나가는 '자그르르'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마치 한 곡의 음률을 듣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보옥리를 돌아나오는 길엔 갈 땐 미처 보지 못했던 네 개의 조그만 섬이 올망졸망 떠 있다. 섬의 이름은 오른쪽에서부터 상도, 미역섬, 욕매도, 갈도. 네 섬을 배경으로 아름답게 물드는 황혼도 놓치기아까운 비경이다.

예송리 상록수림

네 개의 조그만 섬을 지나 동쪽 끝까지 달려야 마주할 수 있는 해변에선 고색창연한 숲의 울림에 빠져든다. 후박나무, 붉가시나무, 생달나무, 해송, 팽나무, 작살나무, 누리장나무 등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나무들이 사시사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이곳은 예송리 상록수림. 길이 740m, 폭 30m의 반달 모양으로 지금부터 300년 전 동남풍을 막기 위한 방풍림으로 조성됐다. 천연기념물 제40호에 어울리는 멋과 품위를 지녔고, 이곳에서 맞는 일출은 완도 팔경의 하나로 꼽힐 만큼 아름답고 화려하다.

마을 뒤편 당숲도 상록수림 못지 않다. 지난 수백년간 마을 서낭신을 모시는 신성한 숲으로 주민들의 보호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원시 자연상태는 바닷가 상록수림보다 훨씬 낫다. 선착장 건너편 예작도에도 천연기념물 제338호로 지정된 감탕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수령 250년의 이 나무는 가지가 사방으로 뻗어 만드는 그늘만 25m나 되는 신목(神木)이다.

중리·통리 모래 해변

섬 가운데 청별항과 예송리 사이에 위치한 중리'통리 해변은 1km가 넘는 모래 사장에 눈을 뗄 수 없는 곳.

입자가 미세해 부드러운 모래찜질로 특히 유명하다. 수심이 완만해 여름철이면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단위 피서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이기도 하다.

통리 해수욕장엔 색다른 볼거리가 있다. 하루 두 번씩 썰물 때마다 나타나는 목섬이 바로 그것. 통리에서 목섬으로 들어가 고동'게'바지락'성게'해삼 등을 잡는 갯벌체험은 보길도 관광의 또 다른 별미로 손색이 없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세상과 드인 고산 윤선도

13년간 머물었던 '보길도'

병자호란이 일어난 1637년. 가솔들과 함께 탐라 뱃길에 오른 고산 윤선도의 마음은 착잡했다. 해남 고향에서 목숨을 걸고 오랑캐와 싸우러 강화도로 향했으나 임금이 청나라에 항복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때문이다.

비분강개한 윤선도는 다시는 세상을 보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탐라로 발길을 돌린 터였다. 하지만 하늘의 뜻은 오묘한가 보다. 풍랑을 만나 탐라에 이르지 못한 윤선도는 잠시 정박한 섬의 수려한 자태에 마음을 뺏겨 아예 정착하고 만다. 윤선도가 13년을 보내며 '어부사시가' '오우가'를 남긴 섬, 바로 보길도다.

세연정은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초속적 자유를 추구했던 윤선도가 보길도에 만든 이상향이다. '주변 경관이 깨끗하고 단정해 기분이 상쾌해 진다'는 뜻의 세연정은 인공 연못으로 꾸민 조선시대 대표 정원이라 할 정도로 볼 게 많다.

우선 판석대는 굴뚝다리라고도 불리는 국내 유일의 석조보. 건기 땐 돌다리가 되고, 우기 땐 폭포가 돼 일정한 수면을 유지한다.

회수담은 세연정 동쪽에 별도로 만든 작은 연못. 수입구와 배수구를 조절해 항상 일정한 수위를 유지하게 하는 장치가 있고, 담 가운데 연꽃을 심어 연밥을 타기도 했다는 기록이 전해 온다.

칠암(일곱개 바위)도 빼놓을 수 없다. '뛸 듯 하면서도 아직 뛰지 않고 못에 있다'는 뜻의 혹약암은 마치 힘차게 뛰어갈 것 같은 큰 황소의 모습을 닮았다.

◇가는길

보길도 가는 길은 쉽지 않다. 대구에서 보길도까지는 적어도 6시간 이상 걸린다. 구마 고속도로~남해고속도로~순천~강진까지는 외길이지만 배로는 강진~완도~보길도, 강진~땅끝마을~보길도 길이 있다. 다만 완도나 땅끝마을에서 보길도로 가는 길은 예전보다 훨씬 편해졌다.

종전엔 배로만 보길도에 드나들었지만 지난 1월말 보길대교 개통으로 인근 노화도까지만 배를 타고 들어가 보길도까진 육로로 이동할 수 있다. 노화도까지 뱃삯은 어른 기준 5천원선이며 차량(기사 포함)은 1만4천~5천원선.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