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신 영등할미가 하늘로 올라가는 모양이다. 한동안 뜸하던 결혼식 청첩장이 다시 찾아드는 것을 보니. 그런데 영등할미가 비켜간 그 자리를 선거바람이 채울 태세다. 서민들로선 이래 저래 바람 잘 날 없는 세상살이다.
영등할미는 대단한 심술꾼이다. 영등할미가 며느리와 함께 나타날 때면 미운 며느리의 고운 다홍치마를 얼룩지게 하려고 비를 뿌려댄다는 것이다. 반대로 딸을 데리고 올 때면 다홍치마가 펄럭여서 예쁘게 보이게 하려고 바람이 분다고 한다.
아이러니다. 영등할미의 의도와는 달리 이 바람 때문에 바다에서는 풍랑이 그치지 않고 육지에서는 풍년을 걱정하게 만든다. 지역마다 영등할미 모시기에 치성을 드리는 것도 변덕스런 만큼 성깔이 여간 까탈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력 2월에는 결혼도 피하는 것이 우리네 풍습이었다. 敬畏心(경외심)에서일 것이다.
이번엔 풍향을 종잡을 수 없는 선거바람이 불고 있다. 지역을 선거구로 하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진원인 '박풍'이 그것이다. 지역에서 선거 바람이 일었던 경험이 있다. 12년 전 15대 총선 때였다. 대구 10개 선거구 중 당시 거대 여당이었던 신한국당은 단 2석을 건지는 참패를 당한다. 무소속과 자민련이 절대 열세를 극복한 것은 제갈량의 동남풍처럼 바람이 도와준 것이었다.
소설 삼국지에서 조조에게 패퇴한 유비는 손권과 동맹을 맺는다. 연합군은 양자강 중류 적벽에서 火攻(화공)으로 조조의 군함들을 불사른다. 절대 열세에 있던 전세를 한방에 뒤집어버린 승전보 뒤에는 제갈량의 기적 동남풍이 있었다. 영등바람이 편서 계절풍이듯 동남풍도 계절풍이었다. 소설이 칠성단을 쌓고 사흘 밤낮을 기도한 제갈량의 神通力(신통력) 으로 미화한 것이다.
화살은 시위를 떠났다. 이제 '박풍'이 불어줄까. 그러면 동남풍이 될까, 영등할미 바람이 될까. 3선의 국회의원을 비롯, 나름대로 내로라하는 면면들이 정책이나 공약보다 배경화면에 더 신경 쓰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다. 마침 지역에서는 막강 한나라당에 대적할 정당이 없는 터에 당에서 버림받은 후보들이 무더기로 '박풍'을 기대하며 선거전을 달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박풍'의 풍향과 풍속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경우 논설위원 thel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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