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쟈스민 향이 휘도는 동네

부활절 휴가를 딸네 식구들과 보내기 위해 LA로 옵니다. 서쪽에서 동쪽 끝 뉴욕까지 아기를 데리고 오기에는 힘든 여행길이라고 단출한 우리가 옵니다.

공항에 도착하니 팜트리가 반갑다고 손짓하는 이곳 LA는 공기부터 뉴욕과 다릅니다. 뉴요커인 딸과 사위는 뉴욕에 대한 그리움이 짙다고 하면서도 이곳이 살기 편하고 생활비도 적게 든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다 친절하다고 합니다. 사철 꽃이 피는 동네, 가까운 산에는 만년설이 덮여 있고 하루에 스키를 타고 산을 내려와 수영을 할 수 있는 동네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무엇이든지 가능하다고 합니다.

산과 바다가 있는 도시, 산타 모니카 해변을 따라 드라이브를 시켜주는 뉴욕 살던 친구는 우리더러 LA에 와서 살자고 합니다. 그 친구가 사는 코리아타운은 다운타운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운타운에 좋은 빌딩 23개를 한국 사람이 샀다고 합니다. 이곳저곳에 한국어 간판들이 즐비합니다. 도로의 표기까지 한글로 되어 있습니다. '올림픽 블바드'(올림픽 거리)라고 영어 밑에 쓰여 있습니다. 중국 연변에서 보던 것 같이 반갑습니다. 친구는 도서관에 데리고 갑니다. 한국어로 된 책이 한방 가득 차 있습니다. 신간도 있고 잡지까지도 비치해 두었습니다. 이곳이 미국인지 한국인지 구분이 가지 않습니다.

40여년을 뉴욕에서만 살아온 나는 선뜻 이사 오겠다는 마음은 일지 않습니다. 그래도 한국이 가까워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오염이 없는 이곳, 늘 꽃이 피어 있는 이곳이, 우울한 겨울이 길게 누워있는 뉴욕보다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활절, 딸내미 동네 성당은 유색인들로 꽉 차 있습니다. 백인도 드문드문 섞인 동네성당에 모든 유색인종들이 영어로 미사를 드립니다. 이것이 미국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아들네 갔을 때, 백인 천지이던 그 부자 동네에 비하니 너무도 편안했습니다. 내 옆에는 필리핀인 같고 또 앞에는 라티노 같습니다. 중국인도 뒤섞인 이곳 성당에서 딸은 참으로 편안하다고 합니다. 장차 미국은 이런 땅이 될 것 같습니다.

이 성당에서는 백인 우월주의가 없는 것 같습니다. 평화의 인사에 이리저리 돌아보다 눈물이 핑하니 돕니다. 아, 내가 어깨를 펴고 있습니다. 백인 동네에서는 나도 모르는 새, 어깨에 힘을 주고 살았던 모양입니다. 중국인, 필립피노들, 그리고 라티노들과 백인들이 "평화를 빕니다." 하고 인사를 합니다. 성 가브리엘 산이 둘러 쌓인 그곳 동네에도 쟈스민 향이 은은히 피어나고 있습니다.

백영희(시인·뉴욕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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