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종문의 펀펀야구] 삼성 라이온즈 원년 멤버들 홈커밍

"아저씨, 빨랑 좀 출발 하세요." 차장 아가씨가 다급하게 고함을 지르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기사는 백미러를 돌아보았다. 손님이 반쯤 찬 시내 버스 안에는 9회초 투아웃 만루의 긴박한 상황을 알리는 프로야구 중계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1점을 앞서고 있는 삼성 라이온즈. 8회말 대타 박찬의 좌중간 2루타로 역전에 성공했지만 9회초 다시 위기에 몰려 있습니다. 타자는 4번타자 이광은. 마운드에는 황규봉이 지키고 있습니다. 볼카운트 투볼…." 버스가 다시 출발하긴 했지만 느릿느릿 빨리 가지 않는다. "야구 때문에 또 벌금이야." 벌써 몇 번째 들려오는 차장 아가씨의 넋두리도 이젠 힘이 없다. 프로야구 초창기인 82년 여름날 저녁 대구 시내버스에서 일어난 이야기다.

정말이지, 그때는 삼성의 승패에 따라 저녁상의 밥맛이 달랐던 열성 팬들이 너무나 많았다. 오늘날처럼 다양한 중계 채널이 없었기 때문에 늦은 퇴근 후 문에 들어서며 물어보는 말이 "야구 어떻게 됐어?"였다. 이겼다면 기분파로 변하는 남편 따라 야구에 자연 관심을 갖던 아줌마들도 이만수가 홈런을 친 날이면 맨발로 뛰어나가 문을 열었고 묻기도 전에 소식을 전하곤 했다.

돌이켜보면 초창기 프로야구는 각 지역의 고교 야구 출신 선수들이 그대로 프로에 진출, 지역 대결 구도로 연결돼 폭발적인 지지와 인기를 얻었다. 특히, 삼성은 전원이 대구·경북에서 태어난 토박이들이었고 고교야구 시절 전국 무대를 휩쓴 쟁쟁한 멤버로 구성되어 기대와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 보유선수가 늘어나고 선수 트레이드나 드래프트 및 용병제도, 그리고 자유계약선수(FA) 시장이 생기면서 선수 구성도 달라졌지만 그때는 선수들이 형제같고 자식같은 우리들의 우상이었다. 지금도 그때를 그리워하며 그 시절의 열정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팬들이 너무나 많다.

야구도 잘해 프로야구 초창기 6년동안 4번이나 한국시리즈에 올라 늘 대구·경북의 자부심을 느끼게 했지만 정작 정상의 문턱에서는 번번히 고배를 마시며 애간장을 녹였던 삼성이었다.

암울하고 적적했던 시대의 우리들에게 활력소가 되어주고 애증을 나누었던 삼성 라이온즈의 원년 멤버들이 2008년 개막전을 여는 대구에 온다. 타고난 선두 타자 정구왕에 다람쥐처럼 펜스를 타고 올랐던 장태수, 발 빨랐던 허규옥, 홈런을 치고 깡충깡충 뛰던 이만수, 찬스에 강하면서 타격 폼이 특이했던 함학수. 소탈한 대타 전문 박찬, 철벽 내야를 자랑했던 김한근, 오대석, 천보성 등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돌아보면 그때를 기억하고 추억하는 우리들은 참으로 행복하다. 지역색이 짙었던 초창기 프로야구의 분위기는 이제 더 이상 없을 것이고 그때의 불같았던 열정도 그 시절을 기억하는 세대만의 특권으로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원년 멤버 홈커밍데이를 통해 지난 시절의 뜨거웠던 향수가 되살아나 다시금 대구의 삼성 라이온즈로 한마음이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최종문 대구방송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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