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보통사람' 퍼스트 레이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 20년이 가깝지만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대통령 부부가 이 나라에 남긴 상처는 크고도 깊다. 그들은 정적 암살 등 갖은 악행 끝에 절대 독재자로 군림했다. 루마니아를 私設(사설)왕국으로 만들다시피 했던 차우셰스쿠야 말할 것도 없지만 그 아내 엘레나도 그에 어금버금할 악녀이기는 마찬가지다.

몹시 가난하게 자랐던 엘레나는 대통령 부인이 된 후 '보석벌레'라 할 만큼 사치를 일삼는 한편 무소불위의 권력행사를 했다. 부부세습을 꿈꾸었던 그녀는 민주 혁명이 격화되자 직접 발포 명령을 내리는 등 최후까지 권력을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쳤다. 부부가 처참하게 총살당한 후 혁명군들이 대통령 관저를 수색했을 때 황금 욕조와 수백벌의 밍크 코트, 다이아몬드 박힌 구두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초호화판 생활에 두눈을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비단 엘레나뿐일까. 중국 모택동 주석의 부인 江靑(강청),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 부인 이멜다, '발칸의 도살자'라 불리던 유고 밀로셰비치 대통령의 부인 미라 마르코비치 등 남편의 권력을 등에 업고 갖은 위세를 부리던 아내들이 적지 않다. 하기야 한 국가의 퍼스트 레이디가 거대하고도 달콤한 권력의 유혹 앞에서 평상심을 유지하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 같다.

요즘 지구촌의 눈길이 아시아의 한 여성에 쏠리고 있다. 臺灣(대만)의 차기 퍼스트 레이디인 저우메이칭(周美靑'56) 여사. 금융회사의 법무처장인 그녀는 남편 마잉주(馬英九)의 총통 당선 이후에도 여느 때와 같이 담담한 얼굴로 직장에 출퇴근하고 있다. 수줍어 보이는 맨얼굴에 청바지 차림의 캐주얼한 복장으로 교통카드를 충전하며 버스로 출퇴근하고, 공항에서는 특별대우를 거부하고 줄을 서서 수속을 밟는 모습이 무척이나 신선해 보인다. 남편의 타이베이(臺北) 시장 재임시절에도 드러나지 않는 내조로 일관하면서 집안의 야당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녀답다.

지금 대만에선 저우 여사의 사직 여부가 큰 관심사다. 아무래도 개인적 커리어를 희생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과 이권에만 개입하지 않는다면 그만둘 이유가 없다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한다. 권력에 초연해 보이는 저우 여사로 인한 신선한 충격에 대만은 행복한 고민에 빠진 듯하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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